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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곽정은의 단호한 러브 클리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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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사랑이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혹은 기대하는 대로 흘러가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대부분의 사랑은 그렇지 않아요. 처음엔 그런 듯 보여도 곧 얼마쯤의 시간이 지나면 그 쓸쓸하고 초라한 맨얼굴을 드러내는 것이 사랑이 아닌가 싶고요. 당신의 이야기를 받아들고 전 이 첫줄을 쓰기까지 오랜 시간을 망설였습니다. 네, 사연의 디테일이 조금 다를 뿐 당신의 사연과 내가 경험한 일은 그리 다르지 않네요. 기대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고, 알면 알수록 초라해지는 상대방의 어떤 것들을 보아 버렸다는 점에 있어서요. 고로 이 답장은, 당신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그리고 우리와 비슷한 일을 경험한 많은 이들에게 보내는 것이기도 할 겁니다. 자, 당신의 마음으로 한번 들어가 봅시다. 솔직히 얼마나 충격이었겠어요? 웃음 코드가 잘 맞았으니 함께 참 행복하게 많이 웃었을 테고, 좋아한다는 표현도 많이 했던 그런 사람인데요. 그런 사람이 알고 보니 전 여자친구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도 있었고, 나와 사귀는 동안에 몰래 그 여자를 만나려고 연락까지 했으니까요. 실망하는 것도 당연하고, 자꾸만 의심이 드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죠. 예전과 같은 마음으로는 도저히 사랑할 수 없고, 그런 상태에 놓인 자신에 대해서도 좋은 느낌을 가질 수 없겠죠. 이런 상황이 괴로우니까, 그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을 겁니다. 이건 더 이상 행복한 연애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바로 그 지점에서 생겨난 겁니다. 당신은 분명히 당신의 모습을 기준으로 어떤 결정을 내렸어요. ‘이대로는 내가 행복할 수 없겠다’ ‘나의 변해가는 모습이 내 맘에 들지 않으니 이 만남은 그만하는 것이 좋겠다’라는 생각요. 이때 당신이 내리는 판단은 철저히 나라는 사람을 중심에 두고, 나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거죠. 이렇게 판단할 수 있을 땐 솔직히 친구들의 조언도, 그 어떤 전문가의 조언도 필요 없어요. 당신을 가장 존중하는 방식, 당신의 내면의 소리를 들어주는 방식은 세상 누구보다도 당신이 제일 잘 알 테니까요. 그런데 당신이 지금 흔들리는 이유는 뭔가요? 판단을 하는 기준이 당신을 떠나 외부의 어떤 것들에 머물 때, 당신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붕 뜬 상태로 괴로워지고 있는 게 보이지 않나요? 남자친구가 전 여자친구에게 연락을 했으니 그건 바람일까 아닐까, 3년을 사귀는데 아직 괜찮은 사람인가 아닌가 모르겠다, 남자친구가 이렇게 울면서 사과하는데 믿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건 당신의 고민 같지만 사실 당신의 고민이라고 할 수 없죠. 그냥 그를 반복적으로 재단하고 싶은 것뿐이에요. 그의 행적, 그의 신뢰도, 그의 눈물, 그를 판단하고 평가한 결과에 주목하는 순간 당신은 흔들리게 되는 게 보이지 않나요? 물론 이 과정이 아예 불필요한 건 아니에요. 당신의 입장, 그리고 감정을 알기 위해선 그의 행동을 되짚어보는 것이 꼭 필요했겠죠. 하지만 그 사건이 일어난 후로도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이 과정을 반복하고 되새김질하고 있는 것이 문제인 거고요. 세상 모두가 ‘그 정도는 용서해줘도 되지 않나’라고 말한다고 해도, 당신이 용서하거나 감당할 수 없다면 그건 용서하지도 감당하지도 않는 것이 맞아요. ‘이건 내가 참을 수 없고, 참아서는 안 되는 일이야’라고 자신을 위하고 존중하는 선택을 하고도 당신은 지나간 과거를 계속 되짚고 있네요. 네, 자신이 시간과 노력을 들였던 관계가 무너져 버리는 일 앞에서, 손실혐오(동일한 양의 이득보다 손실을 더 충격적으로 느끼는 심리)를 느끼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죠. 그동안 들인 시간이 아까워 미적거리는 동안, 당신의 소중한 1년 반이 지나가 버리고 말았네요. 당신 스스로 목소리를 믿으세요. 비단 이 연애뿐만 아니라, 인생의 중요한 결정은 바로 이런 방식으로 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남의 말대로 하는 것보다 처음엔 좀 고통스럽겠지만, 그 결과는 훨씬 값지죠. 자기 내면의 목소리대로 결정하는 사람은 자신과 더 좋은 관계를 맺게 되고, 그러므로 그 선택 이후에 그는 더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으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그 결정들이 모여 당신의 인생을 만들겠죠. ‘그런 사람을 어떻게 만나냐?’는 친구들의 조언도, ‘연애를 하는 내 모습이 맘에 들면 계속 해보라’는 제 조언도 사실 다 필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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