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정은의 단호한 러브 클리닉
Q 연애 실패 뒤 명리학·점성술 공부해 상담도
다시는 실패하지 않겠다는 생각 강해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에 연애 못 하는 것 같아
A ‘친밀함’은 ‘상처받을 가능성’을 포함해
‘실패하면 안 돼’는 ‘비합리적 신념’
‘공부’의 의미, 한 번쯤 다시 생각해보길
Q 저는 경기도에 사는 30대 초반 여성입니다. 저는 현재 블로그에서 사주, 점성술, 연애 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거듭되는 연애 실패, 그리고 ‘지피지기면 백전백승’’라는 생각 때문에 몇 년 전부터 사주와 점성술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블로그에 들어오는 방문자 중 절대다수는 여성분이고, 거의 99% 이상 연애와 관련하여 고민이 있거나, 상대방의 사주나 별자리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 오는 분이 대부분입니다.
저도 나름 다년간 연애 실패에 대한 경험치가 쌓여서 그 덕분에 그들 이야기에 공감해주고, 들어주고, 해결 방법까지 알려 드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 과오 덕분에 마음 아픈 다른 사람들을 어루만져 줄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스스로 대견한 느낌까지 들어요. 옛 연인들이 없었더라면 저도 이런 블로그를 운영할 수 없었겠지요. 지난날 연애 때문에 여러 번 ‘삽질’을 했었기에 지금은 나름대로 정신 차렸고 사람 보는 눈도 생긴 것 같아요.
하지만 지난 상처와 실수 때문에 또다시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고자 상대방에게 매우 방어적으로 대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성과 만나서 이야기를 한번 해보면 상대의 표정, 말투, 눈빛, 시선, 행동 등을 매우 섬세하게 관찰하기도 하고 (직업병인 것 같습니다) 나랑 좀 안 맞을 것 같으면 하루 이틀 사이에 관계를 끝장내버리기도 합니다. 사실 나와 맞는 사람을 고르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워낙 예전에 볼꼴 못 볼 꼴 다 보고 구질구질하게 끝장난 인연들이 많은 터라 이젠 두 번 다시는 실패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만 똘똘 뭉친 것 같습니다. 상대의 단점이 너무 크게 보이기도 하고, 예전처럼 제가 먼저 적극적으로 굴거나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일은 거의 만무한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다행인 것 같지만요.
사실 예전의 실패한 연애들 때문에 나이 먹으면서 많이 염세적이고, 현실적으로 바뀌게 된 것도 있습니다. 상대가 적극적으로 나오지 않으면, 제 쪽에서도 더는 다가가지 않고, ‘썸’이 흐지부지되면 더는 돌이킬 수 없을 거란 생각에 내 쪽에서 먼저 연락 끊고 포기해버리는 것 같아요. 요즘은 ‘썸남’도 없고 남친도 없는데, 일상이 너무 평온하고 자유로워서 평생 상대 없이 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네요. 어릴 때는 정말로 이 구역 스캔들 메이커, 폭주 기관차였는데 말이죠.
사람 많이 만나보고, 연애 경험치 쌓이다 보니까 속된 말로 그놈이 그놈 같고, 다 거기서 거기인 것처럼 보이더군요. 나쁜 남자에 대한 경험치가 쌓이다 보면 진짜 세상 모든 남자가 다 ‘쓰레기’처럼 보이고, 그런 생각의 굴레를 벗어나기까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요즘 고민이 많은 것 같습니다. 연애 때문에 사주랑 점성술을 배웠는데, 그것 때문에 오히려 연애를 못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실패가 두려운 여자
A 연애를 해볼 만큼 해보고, 사람을 겪을 만큼 겪은 사람의 허무한 마음이 느껴지네요. 혼란과 찬란함이 뒤섞인 20대를 지나 30대를 맞이한 사람의 ‘더는 상처받고 싶지 않아’라는 다짐도 느껴지고요. 연애 상담을 하고 계시니 ‘나는 절대로 실수하면 안 되고 그럴 리도 없어’라는 비장함도 조금은 엿보입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런 생각 전부가 당신에게는 혼란만 일으키는 원인입니다. 별로 좋지 않아요. 하나하나 분석해보죠.
첫 번째, ‘더는 상처받고 싶지 않아’라는 말은 사랑하다 상처받아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 만한 생각이죠. 하지만 조금만 냉정해집시다. 조금의 상처도 받지 않고 그저 내가 원하는 대로 그대로 실현되는 관계가 가능한가요? 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친 사람이 나에게 버럭 화를 낸다면, 우리는 함께 짜증이 나면 났지 상처받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친한 친구가 생각 없이 던진 한마디에, 우리는 깊은 상처를 받기도 하죠. 우리가 누군가와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 안에는 이미 ‘상처받을 가능성’이 포함된 겁니다. 관계에 들인 시간과 에너지가 크면 클수록, 우리는 더 잦은 상처에 노출되니까요.
그러므로 더는 상처받고 싶지 않다면 정답은 하나뿐입니다. 누구와도 친밀한 관계를 만들지 않는 것이죠.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제 더는 연애 안 할 거야’라고 선언하기도 하고, 당신처럼 방어적인 태도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그래 봐야 그런 선언과 태도가 바뀌는 건 시간문제에 불과합니다. 사람은 어떻게든 친밀하고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를 곁에 두고 싶어 하는 존재니까요. 당신이라고 예외일 수 없죠. ‘그놈이 그놈’이라고 실망 가득한 생각을 하다가도 결국 ‘연애를 못 하는 나, 뭐가 문제일까’라는 생각을 하며 내면의 갈증을 느끼고 있잖아요. 연애가, 결혼이 필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당신은 애정을 느낄 존재를 필요로하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상처받고 싶지 않아’라는 생각은 실현될 수 없는 명제에요. 상처를 받지 않는 관계란 없습니다. 다만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 노력하고, 상처를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더 단단해지는 성숙한 관계라는 것이 가능한가 그렇지 않은가의 문제일 뿐이죠.
두 번째, ‘나는 더는 실수하면 안 돼(왜냐면 이제 나는 좀 알거든)’라는 생각에 관해서도 이야기해보죠. 20대에는 정말 폭주 기관차처럼 무모한 연애도 하고, 구질구질하게 끝난 경험도 많았지만, 당신은 이제 30대이니 그걸 반복하지 않겠다고 깊은 다짐을 합니다. 자신의 연애 실패 경험을 반면교사 삼고, 사주나 점성술을 통해 자신의 문제는 물론 남의 문제도 들여다보는 경험을 하고 나니 이런 다짐은 더 강화될 수밖에 없었겠죠.
하지만 정말 그렇습니까? 더는 실패를 하면 안 되나요? 제가 공부하는 심리학의 한 분야에서는 이렇게 ‘실패를 하면 안 돼’라는 신념을 대표적인 ‘비합리적 신념’으로 정의합니다. 이러한 당위적 사고를 인간이 경험하는 많은 문제들의 근원으로 보지요. 당위적 사고는 많은 경우 인생을 대하는 태도에 직접적인 긴장감을 만들어 냅니다. 자전거를 타면서 오직 ‘넘어지면 안 돼’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편안한 마음으로 풍경도 감상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전자는 자전거를 타는 것 자체를 즐기기도 힘들지만, 온통 긴장돼 오히려 넘어질 확률도 커질 겁니다. 아마 자책도 엄청나게 하겠죠. 그렇게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썼는데 넘어졌다면서 말이죠. 후자는 자전거를 타는 것 자체를 더 즐길 수 있을 것이고, 뭐 넘어진다고 해도 최소한 자기 자신을 심하게 자책하지는 않을 겁니다. 좋은 풍경을 감상했지만 때로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비합리적, 당위적 신념을 갖고 산다는 건 그런 겁니다. 어떤 경험에 대해 긴장도가 높아지게 만들고, 주저하게 하고, 삶을 풍요롭게 경험할 수 없게 하죠. 실패의 경험이 ‘있을 수도 있는 일’이 아니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기에, 이런 가치관을 갖고 사는 한 자신과 온전히 통합되는 경험을 하기 힘들게 됩니다. 나의 장단점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통합’과,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통합은 결국 그 맥락이 같으며 이것은 성숙한 인간으로 나아가는 데 필수적인 조건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우리의 삶이란 결국 ‘관점’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성숙한 삶을 살기 원한다면 성숙한 관점을 가져야 하죠. 내가 골랐던 ‘별로였던 선택’들의 이유를 사주나 점성술에서 찾으셨나요? 그것이 당신 인생의 온전한 나침반으로 기능했다면 사실 ‘남자는 다 쓰레기같이 보여’라는 생각으로 가진 않았을 겁니다. 진정한 학업은 그런 식의 결론으로 우리를 이끌지 않습니다. 나를 보다 정확히 파악하게 하고, 세상에 대한 품위 있는 통찰력과 자애로운 시선을 갖게 하지요. 당신이 했다고 말하는 ‘공부’의 의미를 한 번쯤은 다시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지금 우리가 선택하는 관점이, 결국 우리의 나머지 삶을 좌우하게 될 테니까요.
곽정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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