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3.07 20:37
수정 : 2018.04.05 17:10
[ESC] 이우성의 낙서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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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덕현 개인전 ‘백 투 더 패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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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덕현의 개인전 ‘백 투 더 패스트’(Back to the past)가 3월13일까지 서울 에코락 갤러리에서 열린다. 강덕현은 게임이나 만화의 주인공을 그린다. 아톰, 태권브이, 슈퍼마리오 등이다. 무작정 그리는 게 아니라 본인에게 정확하게 그린다. ‘본인에게’라는 단어가 어색한가? 대상이 동일하다고 해서, 그 대상을 누구나 똑같이 보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고유의 시각을 갖고 있다.(안타깝게도 이 사실을 잊고 산다.) 그래서 강덕현의 그림을 보면 “와, 슈퍼마리오다”라는 탄성보다 “음, 슈퍼마리오? 맞네!”라는 약간은 덤덤한 말을 하게 된다. 그리고 각자의 기억 속에 있는 슈퍼마리오를 떠올리며, 그림 속의 슈퍼마리오와 비교한다. 아마도 이런 과정이 ‘그림을 본다’는 것이겠지. 강덕현의 그림 속에서 아톰은 푸른 하늘을 날지 않는다. 하늘에는 복잡하게 느껴질 만큼 여러 선이 그어져 있다. 악당도 많다. 정신없다. 그런데 나는 그 정신없는 상태가 좋다. 정형화된 어떤 것도 없기 때문이다. 선과 악당이 그리고 아톰이, 그러니까 그림 전체가 어떤 의지를 가지고 어떻게 흘러갈지 작가 스스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내면에서 이런 이야기를 꺼내 이런 방식으로 그리게 될지 작가 자신도 몰랐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자유롭게 그리고 싶다는 열망 자체만이 선명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나는 강덕현을, 어찌 됐건 어딘가로 가고 있는 작가, 라고 부르고 싶다.
창작자에게 불확정성은 위태로운 축복이다. 강덕현은 에나멜페인트로 그림을 그린다. 에나멜페인트는 빛나고, 흘러내리며, 굳은 후에 약간 두께감이 생긴다. 묘하게 입체적이다. 하지만 형태를 정확하게 묘사할 때 용이한 재료는 아니다. 어쩌면 그래서, 형태를 일그러뜨리며 낯선 형태를 발견하려는 이에게, 그 낯선 형태를 통해 자신의 시각을 발견하려는 이에게 좋은 무기다. 강덕현은 부산의 거리, 사람이 많이 다니는 다리 밑 등에 수십개의 작품을 전시하며 이름을 알렸다. 놀이터에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유명세에 힘입어 작년,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많은 전시에 참여했다. 그의 작품은 꽤 팔린다고 알려졌다. 그는 다작한다. 즐겁게 마구 쏟아내고 있다. 그게 무엇일지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적으면 괜한 시비일까? 그래서 앞으로는 뭘 그릴 건데? 어떻게 그릴 거야? 어디에 그릴 거야? 라는 물음에 이 전시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건 아주 독단적이고 어쭙잖은 참견이지만, 이제 페인트와 붓 혹은 막대기를 잠시 내려놓고 앉아서 자신의 그림들을 마주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 그림들이 어떻게 그 자리에 오게 되었는지 나름의 이유를 발견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야만 미래의 작품들이 그에게 찾아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우성(시인 겸 미남컴퍼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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