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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23 20:47 수정 : 2019.10.24 14:34

넷볼을 하고 있는 서울 천동초등학교 학생들과 ‘모두의 넷볼’ 강습회 참가자들. 사진 이정연 기자



연결이 중요한 팀 스포츠 넷볼
여성 전용 스포츠로 출발해
넷볼 알려주는 ‘모두의 넷볼’

넷볼을 하고 있는 서울 천동초등학교 학생들과 ‘모두의 넷볼’ 강습회 참가자들. 사진 이정연 기자

팀 스포츠. 여성들에게는 낯설다. 최근 여자 축구, 풋살, 야구에 관한 이야기가 드물게 회자되지만, 여전히 여성과 팀 스포츠는 거리가 멀다. ‘넷볼’로 이 거리를 좁히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생소한 스포츠인데, 그 경기 방식은 아주 독특하다. 넷볼 전파를 위해 강습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이들을 ESC가 만났다.

피구의 기억, 죽이거나 죽임을 당하거나. 그게 전부였다. 테니스 선수인 같은 반 친구가 던진 공을 이마에 정통으로 맞아 쓰러지다시피 했던 기억. 가장 잊히지 않는 피구의 기억이다. 10월 초 에스엔에스(SNS)에 피구의 아픈 기억을 털어놓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피구 아닌 다른 팀 스포츠의 소개로 이어졌다. 바로 ‘넷볼’이다. 넷볼은 1800년대 말 영국에서 여성 전용 팀 스포츠로 시작됐다. 영국을 비롯해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 여전히 인기 높은 스포츠 중 하나다. 국내에는 1998년 처음 소개됐다. 7명이 한 팀을 이루는 넷볼은 2팀이 겨루는데, 패스로 공을 옮겨 상대 팀 골대에 공을 넣는 스포츠다.

이 왁자지껄한 이야기의 중심에 ‘모두의 넷볼’이 있다. 여성들을 위한 지역 기반 넷볼 커뮤니티의 형성을 위해 모인 이들이다. ‘모두의 넷볼’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이들을 지난 15일에 만났다. 초등성평등연구회 소속 김은혜, 박덕현, 서한솔 교사가 운영하는 ‘모두의 넷볼’은 초등학교 교사, 예비 교사, 성인 여성에게 넷볼을 알려주는 강습회를 열고 있다. 여성가족부의 '청년참여플랫폼 문화혁신사업 (버터나이프크루 문화살롱) 프로그램으로 선정되어 진행하는 강연이다.

조다혜 대한넷볼협회 사무국장이 넷볼 강습을 하고 있다. 사진 이정연 기자

어쩌다 이들은 넷볼을 중심으로 모여들게 됐을까? 경기도 고양시 원당초등학교 김은혜 교사는 “나도 피구밖에 못 해 봤다. 다른 팀 스포츠를 해보고 싶어서 축구를 배우러 간 적이 있는데, 거기서는 또 ‘축구가 살 빼준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더라. 그러던 차에 넷볼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서한솔 교사(서울 노원구 상천초등학교)는 이어 “여성 팀 스포츠는 어느 정도 있지만,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이뤄지는 스포츠는 거의 없다. 다들 일반 여성 스포츠클럽에 갔다가 ‘연애할 시간에 왜 여기에 와 있냐’ 등의 이야기를 듣곤 했다. 그래서 여성의 몸 활동에 관심을 가진 페미니스트들이 함께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실제 그렇게 모이게 됐다”고 덧붙였다. 처음부터 희망찼던 건 아니다. 서울 강동구와 노원구, 경기도 고양시 이렇게 3곳에서 강습회를 진행하려고 했는데, 지원자가 적을까 걱정이 컸다. 기우였다. 1주일 만에 모집 인원 45명이 다 찼다. 김은혜 교사는 “고양에서 강습회를 하는데 수원에서 오는 사람도 있다. 학창 시절 넷볼을 했는데, 할 곳이 없어 포기했다가 ‘모두의 넷볼’을 알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모두의 넷볼이 운영하는 트위터 계정은 ‘피구를 넘어서’(@netball4every1)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여성 어린이·청소년에게 가장 익숙한 팀 스포츠 ‘피구’의 무엇을 넘는다는 이야기일까? “축구에서 골을 넣는 경험과 피구에서 상대 팀을 맞춰 아웃시킨 경험이 똑같을까? 아니더라. 축구를 하다 골을 넣으면 세리머니를 하고 즐거워한다. 그런데 피구에서 상대 팀을 너무 센 공으로 때려 맞히면 미안해한다. 넷볼은 이런 부분에서 완전히 다르다. 공을 만지는 경험 자체만 놓고 봐도, 넷볼이 피구보다 참가자들이 공을 만지는 횟수가 훨씬 많다. 참가자들이 공을 갖고 경기할 수 있는 기회를 더욱 고르게 가질 수 있는 스포츠가 바로 넷볼이다”라고 서한솔 교사는 말했다. 서울 강동구 천동초등학교에서 넷볼을 가르치고 있는 박덕현 교사는 “넷볼은 포지션마다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정해져 있다. 무조건 선수끼리 패스를 하면서 골을 향해 가야한다. 한 명의 스타플레이어가 질주할 수 없는 스포츠다. 그리고 각 포지션은 참가자의 신체적 여건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경기 참여도가 이런 식으로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김은혜 교사는 “넷볼은 공을 가진 사람은 움직일 수 없고, 공 가진 사람을 수비할 때는 90㎝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규칙이 있다. 이런 점은 또 농구나 축구 같은 팀 스포츠와 다른 점이라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넷볼을 할 때는 포지션이 적힌 조끼를 입어야 한다. 사진 이정연 기자

어렸을 적 초등학교 운동장은 남학생들 차지였다. 여학생은 한쪽에서 피구를 하거나 고무줄 놀이를 했다. 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운동장 풍경은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운동장에서 뛰노는 여학생들은 더욱 적어지고 있다. 김은혜 교사는 “여학생들은 몸을 움직이기보다 꾸밈에 더 많은 신경을 쓴다. 고학년이면 남들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게 되는데, 남자는 ‘운동’을 잘해야 하고, 여자는 잘 꾸며야 한다는 기준을 놓고 본다. 그렇게 되면 여학생들은 운동과는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넷볼은 몇몇 학생들에게 중요한 변화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다이어트를 하던 아이들이 땀 흘리고, 운동하고, 밥을 더 먹게 됐다. 박덕현 교사의 실제 경험이다. “꾸미는 데 너무 강박적인 학생이 있었다. 자신의 몸을 외적인 기준에 맞춰 평가하는 게 습관화됐던 아이였다. 그런데 그 친구가 넷볼을 한 뒤 ‘더 잘하고 싶다’면서 점심에 밥을 더 먹기 시작했다. 원래 한 그릇도 다 먹지 않던 아이였다.”

‘모두의 넷볼’ 강습회 참가자들이 넷볼 포지션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이정연 기자

지난 19일 서울 강동구 천동초등학교에서 열리는 ‘모두의 넷볼’ 강습회를 찾았다. 14명의 참가자들이 쉴 새 없이 패스하며 넷볼을 익히고 있었다. 조다혜 대한넷볼협회 사무국장이 이날의 강사였다. “오버헤드 패스(머리 위로 공을 넘기는 패스)는 포물선을 높게 그려 떨어지도록 연습해야 한다. 그래야 본인 팀에게 공을 정확하게 건넬 수 있다.” 조 사무국장의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참가자들은 짝을 이뤄 연습을 이어갔다. 넷볼은 모두 7개의 포지션이 있는데, 각 포지션이 경기를 하는 범위가 다르다. 이를 익히기 위해 1시간 넘게 연습 경기가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헉헉댔지만, 눈은 여느 프로 스포츠 선수보다 더 반짝였다. 승리욕에 불탄 거 같지는 않아 보였다. 정말 재미있는 시간을 그들은 보내고 있었다. 이 강습회에 참가한 백아무개 교사는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배우고 있지만, 실제로 해보니 정말 재미있어서 성인팀을 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이런 팀 스포츠를 즐길 수 있구나 싶었고, 오래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모두의 넷볼 쪽에 강습 뒤 계속 경기를 할 수 있는 성인팀을 만들어달라는 요청도 했다”고 말했다. 이지영 인천 신북현초등학교 교사는 “기본적으로 여학생들을 체육 활동의 제약이 많은 편이다. 남학생들과 같이 운동하면 후방으로 밀려나는 때도 잦고. 그런데 이 스포츠는 같은 성별로만 팀을 이뤄 진행하니 여학생들이 스스로의 활동성을 깨달을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거 같다. 게다가 넷볼이 팀플레이를 하는 스포츠이면서도 겁을 덜 먹고 할 수 있어 정말 좋다”라고 말했다.

모두의 넷볼 프로그램은 강습회로 끝나지 않는다. 3개 지역의 강습 참가자들이 각자 팀을 이뤄 11월30일 경기를 한다. 어떻게 하면 더 세 보이는 팀 이름을 지을까 하고 각 팀에서는 고민이 깊다. 이렇게 빼앗긴 운동장을 찾아 나선다. 즐겁게 그리고 강하게!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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