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영의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퇴사 선언 후 눅진해진 기분
분위기 전환용 뉴욕행 티켓 끊어
내 후임으로 정년퇴직한 선배 와
‘진상’ 부장으로 알려졌던 이
업무 인수인계로 고난의 행군
퇴사 전 마지막 낭만은 저 멀리
뉴욕행 비행기 티켓을 샀다.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니었는데 그렇게 됐다. 퇴사를 선언하고 난 후에는 매일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일 줄 알았더니 꼭 그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녹진녹진한 것이 그만두겠다는 의지와 투지로 가득했던 시절보다도 더욱 축축 처지는 기분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분을 전환하는 가장 간편한 방법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쇼핑과 여행.
그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해결하기 위해 나는 사무실에서 아예 대놓고 스카이스캐너며 인터파크 항공 같은 항공예약 사이트를 띄워놓고 아무 여행지나 검색하기 시작했다. 도쿄나 제주는 뭔가 너무 가깝고(?) 방콕은 얼마 전에 다녀왔고, 유럽이나 가볼까? 3년 치의 퇴직금과 당장 융통할 수 있는 카드 한도를 대충 계산해봤는데…… 난 어쩌자고 이렇게도 돈을 못 벌까? 뭐 이런 생각을 하며 지구 한 바퀴를 돌 기세로 온갖 도시의 항공권을 다 검색했다. 그러다 갑자기 척추에 번개가 내려치듯 눈에 꽂히는 한 여행지. 뉴욕. 기적적으로 두 자릿수의 가격으로 뜬 뉴욕 항공권을 보며 강렬한 구매욕에 사로잡힌 나. 갑자기 치솟은 달러며, 살인적인 물가가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그래도, 뉴욕이잖아.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지만 고백하자면, 사실 스무 살 때, 내 인생 가장 첫 번째 해외 여행지이자, 체류지가 바로 뉴욕이었다. 뭐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었고 그때 당시 도피 유학을 떠나 있던 친구가 싼값에 묵을 수 있게 해준다고 해서 떠난 것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내가 내 나라말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러니까 모국어로 다른 사람을 웃겨주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또한 단행본을 살 돈이 없어서 없는 돈을 쪼개고 쪼개 한인서점에서 〈씨네21〉과 같은 주간지를 사 읽으며 한국어 매체에 대한 갈증을 달랬다. 좀 과장해서 말해보자면 나를 작가로 만들어준 공간, 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기념비적인(?) 곳에 꼬박 12년 만에 진짜로 ‘전업 작가’가 되어 다시 돌아간다니. 너무나도 완벽하게 짜인 내러티브인 것만 같았고, 이걸 결제하지 않는 것만큼 멍청한 짓이 있을까? 나는 뭐에 씐 사람처럼 카드를 들어 항공권을 결제했다. 그리고 해외결제 문자를 받은 후 모든 걸 다 불태운 듯한 기분으로 기진맥진해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 내 자리를 대체할 근무자가 발령이 났다. 나는 나와 비슷한 직급의 사원이나 얼마 전에 뽑은 신입 사원이 들어올 것이라 기대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우리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얼마 전 정년퇴직을 맞아 월례 조회 시간에 30년 근속 공로상까지 받았던 옆 팀의 김 부장이었다. 멀쩡히 자기 발로 잘 나가놓고 도대체 왜 여기에?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와는 달리 다른 사람들은 이 사태를 예상한 듯 파티션 아래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김 부장은 배를 흔들면서 사무실에 들어와서 팀장의 이름을 부르며 “OO아 여기 사무실은 공기가 왜 이래?” 물으며 신입에게 환풍기를 틀라 지시했다. 오 대리가 김 부장을 내 옆 빈자리로 인도하며 말했다.
“이쪽에 앉으시면 됩니다.”
김 부장은 아 그러느냐, 대답하고는 내 옆의 빈 책상에 앉아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소재로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쿨방석이며, 모나미 볼펜 세 자루, 가죽 양장으로 만들어진 회사의 2019년 다이어리. 다이어리를 책꽂이에 꽂은 김 부장이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의자 높이를 조절했다. 김 부장인지 아니면 김 부장이 끌고 온 사물인지 모를 어떤 곳에서 묘하게 고릿고릿한 담배 전 내가 풍기기 시작했다. (이제 보름 뒤면 영영 안 볼 사이이니) 나는 노골적으로 불편한 티를 내며 전기 선풍기를 내 코에 갔다 댔다. 김 부장이 팔을 벅벅 긁으며, 이제 무슨 일을 하면 되냐, 물어봤고 오 대리가 대답했다.
“옆자리의 박상영 대리가 인수인계를 해줄 겁니다.”
아니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 나는 퇴사 의사를 밝힌 이후로 갑자기 나를 형이라고 부르며 친한 척을 다 하고 있는 A를 끌고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사내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동호회를 다 섭렵하며 누구보다도 내부 사정에 빠삭한 그라면 뭔가를 알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과연 A는 이 모든 일의 원인을 다 알고 있었는데, 사측에서는 사실상 가장 존재감이 미비하고 일종의 유배지나 다름없는 우리 경영지원팀에 새로 뽑은 사원을 배치하는 것보다는, 계약직 사원을 배치하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마침 정부에서 임금피크제며 노년 일자리 제도와 같은 종류의 정책을 권장하고 있어, 퇴직한 김 부장을 1년 11개월짜리 계약직 사원으로 다시 뽑았다고 했다. 그의 직책은 부장도 사원도 아니요, 애매하기 짝이 없는 반장이라고. 기존의 직책인 부장과 자음(즉, 비읍과 지읒)이 같다는 이유 때문일까? 기존에 내가 주로 담당하던 구매 업무며 회사 건물의 여러 보수나 허드렛일까지 총체적으로 담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저런 애매한 직책을 새로 만들었다고 했다. “보름 동안 형이 똥 치운다고 생각하세요”라고 말하는 A를 패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나는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김 부장, 아니 김 반장은 팀장과 차장의 이름을 부르며 민철아 여기 커피는 왜 이렇게 맛없는 걸 사놨느냐, 재필아 나 이제 뭐 하면 되냐, 난리가 났다. 아무도 제대로 대답을 하는 사람이 없었고, 그 말인즉슨, 내가 이제 그의 말동무가 되어 줘야 한다는 의미였다. 나는 예산이 모자라 싼 커피를 샀으며, 앞으로 사원들이 요청한 물품을 최저가로 구매하고 기안을 올리시면 된다고(즉, 초등학생도 할 수 있는 지난 3년간의 내 업무를) 설명해주었다. “아 그러느냐” 대답한 김 반장은 일단 오래된 데스크톱을 켰다. 사내 업무 시스템에 로그인하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 후 10초 정도 모니터를 들여다본 김 반장은 키보드에 손을 올리지도 않은 채 “그런데 기안은 어떻게 올리는 거냐?” 물어 나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지난 30년간 그는 도대체 어떤 회사 생활을 해왔던 것인가, 속으로 생각하며 나는 마치 걸음마를 가르치는 부모가 된 기분으로 그에게 인터페이스를 하나하나 설명해주었다. 하나를 가르치면 하나를 까먹고, 둘을 가르치면 또 셋을 까먹는 김 반장 앞에서 나는 향후 보름 동안 월급 루팡이 될 줄 알았던 나의 예상이 완벽히 틀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김 반장은 칠순이 다 된 우리 고모도, 아버지도 문제없이 이용하는, 쇼핑 사이트의 최저가 검색조차 서툴렀다. 나는 김 반장의 컴퓨터에 일일이 유명 쇼핑 사이트의 링크를 ‘즐겨찾기’해주며, “주방 및 청소 비품은 이곳에서 문구류는 이곳에서 사시면 됩니다.” 나답지 않게 매우 친절하고 세세하게 설명했지만, 그는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정말이지 이놈의 회사는 끝까지 나를 가만히 두지를 않는구나. 그래, 곱게 보내 주리라 기대했던 내가 참으로 어리석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뭐 어디까지나 업무의 영역이라 괜찮았다. 문제는 쉬는 시간을 운용하는(?) 방식이었다. 그는 한 시간마다 고함 같은 하품을 내지른 후, “누구 담배 피우러 갈 사람 없냐?”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사무실에서 외쳤다. 팀장과 차장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며 밖으로 가자고 했지만, 당연히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았고, 결국에는 가장 만만한 나에게 함께 나가자고 했다.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 ‘야’라고 불렀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단호히 대답해도, 사람이 가끔씩 걷고 쉬고 그래 줘야 살도 빠진다며(그렇다면 당신의 배는 뭐로 설명할 작정인가요?) 사람을 슬슬 짜증이 나게 만들었다. 어쩔 수 없이 옥상의 흡연실까지 끌려간 나는 어정쩡하게 그의 옆에 서서 핸드폰을 만지며 노골적으로 말을 걸지 말라는 제스처를 취했으나 그런 걸 알아들을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갑자기 나의 고향이며, 사는 곳을 묻더니 내가 살고 있는 동네가 자신이 고등학교에 다녔던 곳이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자기소개를 하기 시작했는데, 당시에 명문이었던 K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역시나 당시에는 명문이었던 인근의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으며, 졸업한 후 유수의 중공업 기업에 취직해 전국팔도를 다 다니다 30년 전, 애를 낳고 서울에 있는 우리 회사로 이직해 정착했다고 했다. 나는 아, 예 그러시군요, 영혼 없는 대답을 했고, 그는 나에게 퇴사 후 계획이 뭐냐고 물었다. 별달리 할 말이 없었던 나는 대학원에 돌아가서 공부를 마치려고요, 대답했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그는 자신이 회사에 다니면서 매일 두세 시간씩 자면서 박사학위까지 마쳤다며, 박사 논문을 쓸 때의 무용담까지 읊어주었다. 나는 속으로 아주 잘 나셨소이다 생각하며,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정말 대단하십니다. 성실히도 사셨네요”라고 대답했다. 그가 들고 있던 종이컵에 담배를 구겨 넣으며 말했다.
“그러면 다 뭐 하냐. 지금 이러고 있는데.”
껄껄 웃으며 종이컵을 창턱에 올려놓은 김 반장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단으로 향했다. 나는 그의 뒤통수에 대고, “여기다 버리시면 안 되는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다 그가 올려놓은 종이컵을 들어 커다란 쓰레기통에 버렸다. 항아리처럼 생긴 쓰레기통에는 얼마나 오래됐을지 모를 꽁초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그것을 보다 문득 그의 나이쯤 되었을 때 나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잠이 들까, 궁금해져 버렸다. 예순 몇 살의 그도, 오늘 밤에는 굶고 자야지 다짐을 할까? 서른 몇 살인 지금의 내가 그렇듯.
박상영(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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