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0.31 09:22
수정 : 2019.10.31 19:02
이대형의 우리 술 톡톡
‘전통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설문조사를 하면 ‘올드(old)하다’, ‘나이 들어 보인다’, ‘세련되지 못하다’ 등이 몇년째 앞서거니 뒤서거니 순위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소비자에게 ‘전통주’는 조상의 조상, 그 조상의 조상이 마신, 아주 오래전부터 마셨던 술이다. 하지만 이런 인식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건 아니다. 수백년 양조장 역사가 있는 독일은 맥주가, 프랑스는 포도주가, 일본은 사케가 전통주다. 하지만 우리와 다른 점은 그들에게 전통주는 ‘현재형’이다. 지금도 즐겁게 자주 마시는 술인 것이다.
‘전통주’라는 단어가 신문에 처음 등장한 때는 1981년 12월께로 추정된다. 당시 1988년 여름 올림픽 개최지로 한국이 선정된 후 외국인들에게 소개할 만한 전통주를 찾게 됐는데, 마땅한 게 거의 없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사라진 우리 술 문화가 복원되지 못한 채 그때까지 이어져 왔던 것이다.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통을 이어온 일부 가양주는 면허를 받고 만드는 술이 아니었다. 토속주(土俗酒)나 민속주(民俗酒)로 불렸다. 1986년께 술 3개가 처음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전통주라는 단어가 조금씩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올림픽을 계기로 전통주의 개념이 정립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전통주’의 ‘전통’은 모호한 구석이 있다. 사전적인 정의는 ‘어떤 집단이나 공동체에서 이미 이루어져 계통을 이루며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사상, 관습, 행동 따위의 양식’이다. 실체가 있는 하드웨어보다는 잘 드러나지 않는 소프트웨어를 이야기하는 것에 가깝다. 술에 빗대 정리하자면, 전통주의 ‘전통’은 손에 잡히는 한 병의 술이 아니라 맛을 만드는 방법, 만드는 사람 등에 더 초점이 맞춰진 것이다.
전통주를 규정하는 제조 시점도 모호하다. 50년 전에 만들기 시작했다면 전통주인가? 100년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을 것이다. 다른 이는 최소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만들기 시작한 것이어야 전통주라고 부를 수 있다고 말할지 모른다. ‘오래전’은 명확하지 않다.
어쨌든 현재 전통주는 3가지 면허를 지칭한다. 문화재 보호법에 의해 중요 무형문화재 보유자의 주류(민속주), 식품산업진흥법에 따라 주류 부문의 식품 명인이 제조하는 주류(민속주),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에 따라 농업인 또는 농업경영체에서 지역 농산물을 이용해서 제조한 주류(지역특산주)들이다.
현재 전통주 대부분은 지역특산주다. 2018년 국세청 통계를 보면 전체 943개 면허 중 민속주는 고작 54개다. 면허의 90% 이상이 지역특산주로, 889개다. 이런 지역특산주 중 26.5%인 236개 면허가 과일 농사를 지으면서 와인을 만드는 과실주 형태다. 소비자에게 와인도 전통주라고 설명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오늘이라도 농민이 지역 농산물로 술을 만들어 면허를 받으면 전통주가 되는 것이다. ‘오랜 시간 이어온’ 같은 개념은 여기엔 없다.
전통주라는 단어는 이제 너무 익숙하다. 하지만 낯익은 말에는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가 촘촘히 박혀 있다. 요즘은 직접 우리 술을 빚는 이들이 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전통주’의 뜻을 곱씹어 볼 때가 아닐까.
글·사진 이대형(경기도농업기술원 농업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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