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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8.15 19:45 수정 : 2007.08.17 12:06

당신도 ‘엔조이’만을 원하시나요 (일러스트레이션 최수연)

[매거진 Esc] 박해미의 오케이클리닉
남자의 눈물에 속지 마시라

“마음을 알 수 없는 남자 동료, 나를 즐기는 건지 사랑하는 건지…”

Q


2년 전 이혼을 하고 혼자 지내는 35살 직장여성입니다.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난 지 1년 반이 됐고 남친의 자상함과 배려에 별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던 터에 회사 동료와 가까워졌습니다. 저보다 세 살 어린 친구로 제가 예쁘게 생각했던 후배였죠. 물론 남친은 이 사실을 모르고 동료는 남친의 존재를 알고 있습니다. 나쁜 짓 하는 것 같아서 회사 동료와 몇 번이고 헤어질 마음을 먹었는데, 그게…, 너무 힘듭니다. 그 동료가 적극적이지는 않지만 퇴근 후 술 한잔하자는 제의를 한 번도 거절한 적 없고 함께 있으면 그도 아주 즐거워합니다. 만날 때마다 잠자리도 하게 됐죠.

이 나이에 남자를 겪을 만큼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동료가 적극적으로 나오지 않는 게 속상하고 그가 무슨 생각으로 저를 만나는지, 단순하게 그냥 즐기는 사이로 생각하는 건지 궁금하고 답답합니다. 이제 그 동료를 만나는 게 좋으면서도 힘듭니다. 당장 결혼하자는 것도 아닌데 이혼한 경력을 결혼할 때 부모에게 말하기 곤란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데, 저와 사귀기 싫어서 그런 건지, 남친이 저에게 잘해주는 거 아니까 그만큼 못 해줄까 봐 겁먹어서 그런 건지…. 제가 그냥 오는 여자 안 막고 가는 여자 안 붙잡는 거냐 물으면, 정말 그런 식으로 생각하냐고 웁니다. 여자 관계가 복잡하거나 비겁한 사람은 아닌데 두 달 넘게 관계는 제자리걸음입니다. 또 이 친구과 잘되지 않더라도 남친과는 헤어져야 하는 게 순서가 아닐까 괴롭구요. 이 사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A


여자의 눈물에 속지 말라고 누군가 얘기했던가요?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네요. 남자의 눈물에 속지 마시라. 냉정하게 말해서 지금 님은 남자의 눈물에 휘둘리고 있는 게 아닌가 싶군요. 물론 좋아하는 사람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면 순간 내가 너무했다 싶기도 하고 마음도 약해지겠죠. 하지만 본인 표현대로 남자를 겪을 만큼 겪었다면 이런 사실도 깨달았을 텐데요. 남자는 여자의 기대보다 거짓말을 많이 하는 동물이라는 걸 말이죠. 그걸 모른다면 님은 아직 연애에 대해서 무지하거나 철없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그 남자가 일부러 거짓 눈물을 흘리는 건 아닐 수도 있겠죠. 하지만 지금 만나는 여자가 이혼녀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데 그것을 부담스러워하거나 그 이유 때문에 관계의 진전을 거부한다면 그 연애나 사랑에 얼마만큼의 진실이 담겨 있는 걸까요.

연애에는 여러 가지 방식과 빛깔이 있습니다. 님이 동료와의 관계에서 의심하는 이른바 ‘엔조이’ 관계도 있죠. 어떤 관계가 좋다, 나쁘다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관계인지 아닌지가 중요하죠. 만약 님이 쿨하게 동료와의 관계를 ‘엔조이’하겠다면 그 또한 다른 사람이 막을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과연 본인이 원하는 게 그것인가요? 아니라면 이 관계에서 고민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단순히 그와 있는 시간이 즐거워서? 그 즐거움 뒤에 남는 허전함은 감당할 수 있나요? 그에게 더 이상의 진지한 관계나 정서적인 밀착감을 바라지 않을 자신이 있나요? 자신 없다면 깔끔하게 정리하세요. 그럴 수 없다면 지금의 관계, 특히 사려 깊은 남자친구를 두고도 다른 사람을 향한 욕망에 흔들리는 이 관계는 본인이 감당할 수 없는 사치에 불과합니다. 상대방이 우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약해진다면 그것은 본인이 그저 나약한 여자에 불과하다는 걸 인정하는 거겠죠. 때로는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도 자기 훈련입니다. 제대로 된 사랑을 하고, 제대로 된 삶을 살기 위한 훈련이지요.

이혼이 늘어나고 있는 세태라고 해도 이혼은 개인에게 분명히 힘든 경험입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겪어야 했던 일이기 때문에 이혼은 인생의 훈장도 아니지만 부끄러운 낙인도 아닙니다. 인생의 모든 교훈이 그렇듯 이혼에 있어서도 잃는 만큼 얻는 것도 있습니다. 저 역시 이혼의 아픈 경험을 했기 때문에 그것으로 실패했던 내 인생의 부분을 만회하기 위해 더 열심히 ‘나’를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반대로 오랫동안 안정된 결혼 생활을 하는 친구들은 또 그만큼 자신에게서 잃는 것이 많습니다.


박해미의 오케이클리닉 / 박미향 기자
이혼 경력을 새로운 사랑의 장애물로 생각하고 상대방의 눈치를 보며 주눅 든다면 결국 그 사랑도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님께는 ‘엔조이’ 관계를 고민하기보다 본인의 인생을 좀더 ‘엔조이’하라고 권하고 싶네요. 과거에 상처받았던 자신을 격려하면서 여자로서의 인생을 즐기려고 노력해 보세요. 지금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흔들리고 괴로운 것입니다. 스스로를 좀더 사랑하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가다 보면 내가 원하는 사랑이 어떤 것인지, 나에게 어울리는 남자는 어떤 사람인지도 알게 될 것입니다.

저라면 지금 남자의 마음을 투시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나라는 존재가 현명하고 흔들림 없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나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도록 좀더 채찍질하겠습니다. 그렇게 나를 바로 일으킨다면 남자의 마음을 읽는 투시력은 수십 권의 연애 관련 지침서를 읽지 않아도 저절로 생길 테니까요.

박해미 배우·뮤지컬 제작자

고민 상담은 go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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