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판 미스터 빈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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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정이현의 남자 남자 남자
명절이면 늘 잊지 않고 안방극장을 찾아오는 손님, 미스터 빈. 그러나 오늘 소개하려는 미스터 빈은, 그 유명한 미스터 빈이 아니다. 하진의 소설 <니하오 미스터 빈>에 나오는 또 하나의 미스터 빈. 공통점은 이름뿐. 그들은 여러 모로 다르다. 우선 국적. 우리의 미스터 빈은 영국이 아니라 중국 태생이다. 중국 하마성에서 태어나 쭉 살고 있다. 본명은 샤오 빈. 그의 직업은 하마성의 비료공장 직원, 그리고 서예가다. 진정한 예술가란 외부에서 명명해주지 않아도 내부 동력으로 충만한 법. 영국의 미스터 빈이 ‘바보’ 이미지로 어필하는 것과도 다르다. 중국의 샤오 빈은 정규교육은 제대로 받지 못했어도 자부심만큼은 하늘 끝에 닿을 정도며, 자신의 예술성을 무시하는 인간을 치를 떨고 미워할 만큼 자의식이 강하다. 그리고 뭐랄까, 지나치게 희화화되어 오히려 세상사로부터 어느 정도 붕 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미스터 빈과 달리 샤오 빈은 너무도 현실적이라 더욱 슬픈 남자다. 그의 인생에 닥치는 모든 곤경이 바로 지상의 집 한칸에서 시작되었음이 이를 증명해준다. 아내의 회사 기숙사에 딸린 단칸방을, 세 식구의 침실이자 거실, 식당, 서예실로 ‘멀티 유스’해야 하는 처지. 그런데 마침 공장에는 아파트 몇 채가 새로 할당되고, 우수 사원은 그곳에 입주할 권리를 받는다. 가진 거라곤 자부심과 자의식뿐인 이 남자, 당연히 그곳의 주인이 자기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세상일이 어디 그리 녹록하던가. 공장의 주택관리위원회가 발표한 새 아파트 입주자 명단에 그의 이름은 쏙 빠져 있다. 뭐 보통 사람 같으면이야, 소주 한잔 털어넣으면서 아쉬움을 꼬깃꼬깃 접어넣을 터. 그러나 샤오 빈은 다르다. 그는 자신의 낙마에 모종의 ‘음모’가 개입돼 있다고 생각한다. 지도자 동지들이 평소 나에 대한 눈길이 고까워 보였어. 일부러 그런 게 분명해! 이 상황에서 절망이 웬 말인가. 그는 외롭고 이상한, 혼자만의 투쟁에 뛰어든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이다. 사리사욕에 눈멀어 공정한 공무집행을 하지 않았다고 의심이 가는 상사를 응징하기 위해 그는 여러 방법을 동원한다. 당서기와 공장장이 등장하는 노골적인 풍자화를 그려 신문사에 보내는 것쯤은 약과. 누가 뭐래도 이유 있는 투쟁을 벌이는 샤오 빈의 모습은, 당사자인 상사들에겐 ‘미친놈’으로, 동료들에겐 ‘꼴통’으로 각인된다. 더 억울한 일을 당한 이들이라고 어디 모자라서 입 닫고 사는 게 아닌데, 왜 혼자 의로운 척 괜히 나서서 우리를 싸잡아 ‘개망신’을 시키느냐는 거다.
정이현의 남자 남자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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