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8.02.27 21:40 수정 : 2008.02.27 21:40

시간에 맡기라는 경구는, 사랑을 잃어본 적 있는 모두가 끄덕일 수 밖에 없는 조언이다. 박미향 기자.

[매거진Esc] 정이현의 남자 남자 남자

사랑을 믿는 것이 쉬울까, 믿지 않는 것이 쉬울까. 내 경우를 말하자면, 믿지 않는 쪽이 더 쉽다. 그렇지만 번번이 믿고, 그래서 어려워지며, 다친다. 친하지 않던 사이끼리 어쩌다 그 상처의 무늬들에 대해 털어놓게 되고, 그 과정을 통해 급격한 친밀감과 유대감을 느껴본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나간 사랑의 역사에 대해 회상하면서 늘 제 쪽에서 먼저 떠나왔다 말하는 사람과는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다. 후회와 눈물, 회한과 반성, 체념과 절망 같은 말들의 반대편에 있는 단어는 오직 오만뿐이니까. 다시 한번 내 심장에 철철 붉은 피 넘쳐흐르는 순간 오만한 친구는 불필요하다. “넌 그때 어땠어? 이럴 땐 어떻게 해야 계속 숨을 쉬고 살 수가 있는 거야?” 그를 붙들고서 이렇게 물을 수 없는 것이다.

‘사랑을 잃는 것이 모든 것을 잃는 것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다’

2008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권여선의 소설 <사랑을 믿다>의 화자는 이렇게 중얼거리는 서른다섯 살의 남자다. 이 문장은 명확한 의미를 품고 있다. 사랑을 잃는다 해도 결코 모든 것을 잃는 건 아니라는 것. 지당하신 말씀이다. 시간에 맡기라는 경구는 사랑을 잃어본 적 있는 모두가 씁쓸히 끄덕일 수밖에 없는 조언이다. 동시에, 그러니 어떻게든 꾹 참고 견뎌보라는, 결국 지금은 그 무모한 방법 말곤 없다는 뼈저린 충고이기도 하다.

남자는 3년 전에 이별했다. 왜, 무슨 이유로, 어떤 과정을 거쳐 이별에 닿았는지 남자는 구태여 밝히려 들지 않는다. 사랑을 믿은 적이 있고 (믿었기에/상대가 아닌 사랑에) 당한 적이 있다고 진술하는 게 전부다. 그리고 소설은 3년 전 그가 실연 당했을 때, 그보다 3년 전에 연락 끊긴 ‘아는 여자’를 다시 만나 술 마셨던 밤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여자는 남자에게 자기의 실연 극복기에 대해 천천히 들려준다. 아니, 극복이란 말에는 무언가를 이겨내거나 굴복시켰다는 뉘앙스가 들어 있으므로 왠지 적절하지 못한 표현이다. 실연이라는 거창한 고통을 지나 보잘것없는 일상의 세계로 마음의 각도를 살짝 기울였는지에 대한 고백이라고 해두자.


정이현의 남자 남자 남자
맥주와 섞인 안동소주를 마시며, 제육과 해물을 반반씩 볶은 안주를 먹으며, 남자는 여자의 덤덤한 고백을 듣는다. 이윽고 여자의 이야기 안에서 남자는 자신의 고통이 서서히 무뎌지는 걸 느낀다. 그건, 고통은 고통을 알아본다는 것, 그리고 제 안의 괴로움에만 오롯이 집중하고 있을 때는 죽어도 안 보이던 타인들의 하찮으며 지독한 아픔들을 향해 눈을 돌리게 되었다는 의미기도 하다. 이기적인 치유법인가? 그래도 좋다. 목으로 밥알을 넘길 수 있고, 오늘 밤 얕은 잠이라도 들 수 있다면 …. 타인과 내가, 세상과 내가, 투명하고 가느다란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실감. 그 남자도 우리도 극한 환란 중에서나 그걸 깨닫는다.

3년이 지나고 ‘괜찮아졌다. 모든 것이 소소한 과거사가 되었다’고 말하는 이 남자의 마지막 독백을 들어보자. ‘그녀는 오지 않고 나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 돌이켜 보면 엄청난 위로가 필요한 일이 아니었다. 사랑이 보잘것없다면 위로도 보잘것없어야 마땅하다. 그 보잘것없음이 우리를 바꾼다. 그 시린 진리를 찬물처럼 받아들이면 됐다.’ 더 이상 믿지 않는다니 그가 부럽고 가여우며 또 아리다.


정이현 소설가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esc : 김연수의 여자여자여자 / 정이현의 남자남자남자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