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시리즈로 잊지 못할 휴먼 다큐의 세계 보여주었던 문화방송 유해진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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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도대체 누구야?-PD열전
‘사랑’ 시리즈로 잊지 못할 휴먼 다큐의 세계 보여주었던 문화방송 유해진 PD 꼬박 2년이 지났다. 2006년 5월3일. 그날도 요즘처럼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려는 계절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지던 날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그날 밤 티브이 앞에 앉아 있던 많은 시청자들은 잊지 못할 한 편의 휴먼 다큐멘터리를 봤다. ‘너는 내 운명’이라는 운명적인 다큐멘터리였다. 그리고 1년 전 이맘때에도 우리는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났다. ‘안녕, 아빠’와 ‘엄지공주, 엄마가 되고 싶어요’. <휴먼 다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2년 동안 방영된 여러 편의 다큐멘터리 중 이 세 편을 또렷하게 기억하는 이들이 아직도 많다. 이 세 작품에는 카메라 뒤에서 이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한 남자가 있다. 문화방송 유해진 피디다. 그때 그 주인공들과의 신뢰관계 덕에… 1996년 문화방송에 입사한 유 피디는 입사해서 지금까지 13년 동안 ‘다큐멘터리’ 하나만을 고집해 왔다. 같은 ‘다큐멘터리’지만 13년 전과 지금 유 피디의 머릿속에 있는 다큐멘터리의 그림은 사뭇 다르다. “80년대 학번으로 대학을 다니면서 학생운동에 열심이었어요. 그리고 군대에 다녀오니 90년대 중반이 됐죠. 정치적인 얘기들이 영화나 방송 등 우회로를 찾던 시대였어요. 방송을 통해 세상을 바꾸자는 목소리가 있었고, 그 가운데는 다큐멘터리가 있었죠. 그래서 방송 피디직 스터디를 시작했어요. 방송 자체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 방송을 통해 바꿀 수 있는 세상의 모습에 더 관심이 많았다고 할 수 있죠.” 입사하고 동기들이 드라마 피디를 할까 예능 피디를 할까 고민할 때도, 시사교양 피디가 되겠다는 유 피디의 결심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다큐멘터리가 하고 싶습니다”라는 그의 단호한 목소리에 회사는 다큐멘터리라기보다 재연 프로그램에 가까웠던 <다큐멘터리 이야기 속으로> 발령으로 화답했다. 이때부터 유 피디의 단호함은 조금씩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입사 당시에는 학생운동의 연장선에서 이념적 사고를 위한 다큐멘터리만을 생각했어요. 불과 몇년 전만 해도 교양 프로그램에 대한 오만한 자부심이 있기도 했죠.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예능이나 드라마 역시 긍정적인 효과를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지금도 방송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훌륭한 도구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고 방송의 긍정적인 역할과 기능을 고민해요. 다만 방송이 가진 다양한 역할과 방법에 대해 조금 더 넓게 생각하게 된 거죠.”<생방송 화제집중>부터 <타임머신>, <우리시대>, <피디수첩> 등을 거치며 이력을 쌓아가던 유 피디가 자신의 색깔을 좀더 진하게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2006년 <휴먼 다큐 ‘사랑’>부터였다. <인간시대>로 휴먼 다큐의 전성기를 보냈지만 한국방송 <인간극장>에 밀려 꽤 오랫동안 휴먼 다큐에 손을 놓고 있었던 문화방송이 과거의 영화를 되찾아오겠다는 취지로 기획한 이 프로그램에 유 피디는 기쁜 마음으로 합류했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 간다는 건 무척 재미있는 작업이에요. 3~4개월에서 길게는 6개월 넘는 시간 동안 카메라를 돌리면서, 누구에게나 있는 삶의 드라마가 가장 극대화되는 시점을 포착한다는 게 이 프로그램의 매력이었죠. 지금까지 휴먼 다큐가 드라마보다 큰 감동을 주지 못한 것은 그런 시점을 찍지 못하는 현실적인 상황 때문이었거든요. <휴먼 다큐 ‘사랑’>은 촘촘하게 그 드라마를 다 찍어낼 수 있었어요.” 유 피디가 <휴먼 다큐 ‘사랑’>에서 처음 내보인 다큐멘터리는 투병생활을 하던 영란씨와 헌신적으로 영란씨를 사랑했던 창원씨의 이야기인 ‘너는 내 운명’이었다. “사랑 얘기를 찾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모든 사람들이 납득할 만한 사랑 얘기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다가 영란씨와 창원씨를 만나 둘의 얘기를 보면서 이건 정말 진정한 사랑이라고 확신했어요. 찍으면서 힘들기도 했지만 제가 사랑을 하는 것처럼 설레기도 했어요.” 눈물을 흘리면서 촬영했고, 눈물을 흘리면서 편집을 했고, 또 방송이 끝나고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이 둘의 얘기를 통해 자기 삶을 반추하면서 사랑에 대한 희망을 발견한 이들의 글을 읽느라 새벽이 오는 줄도 몰랐다. ‘너는 내 운명’은 유 피디에게 실패임과 동시에 성공이다. “피디는 현장에서 냉정한 존재여야 해요. 그런 면에서 저는 실패했죠. 같이 울고, 급한 상황에서는 카메라를 치우고 같이 뛰어다녔으니까요. 결과적으로는 그 실패 덕분에 가족 같은 신뢰를 얻었어요. 영란씨와 창원씨도 그랬고, ‘안녕, 아빠’의 영훈이와 규빈이에게도 그랬죠.” 그래서 유 피디는 지금도 이들과 가족 같은 관계를 이어온다. 어린이날이 되면 영훈이와 규빈이가 생각나 전화를 걸고, 쇠고기가 논란이 되면 지리산에서 소를 키우는 창원씨가 걱정이다. 엄지공주 윤선아씨도 유 피디에게 전화를 걸어 먼저 임신 사실을 전했다. “노동조합에 파견근무를 하던 지난해 가을에 전화가 왔어요. 임신했다고요. 선아씨가 저라면 다시 한번 임신과 출산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찍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어요. 그래서 기적에 가까웠던 선아씨의 출산 장면을 찍을 수 있었죠.” 그 얘기는 6월6일 <엠비시 스페셜>로 방송될 예정이다. 다음엔 ‘아프리카 소년병’ 현장에 가고파 올해부터 <엠비시 스페셜>에서 일하게 된 그는 다음 얘깃거리를 찾고 있다. “아프리카 소년병에 관심이 있기는 한데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휴먼 다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죠. 그런데 현장에 가고 싶어요. 이라크 전쟁 때 두 번이나 이라크에 다녀왔어요. 그리고 2006년 <휴먼 다큐 ‘사랑’>을 마치고 잠시 <더블유(W)>에서 일하며 레바논에도 갔었죠. 거기서 폭격 때문에 죽을 뻔했어요. 그때 이제 다시는 위험한 데 가지 말아야지 했는데, 요즘에 티베트 사건 등을 보면 다시 가고 싶어져요.” 사회적인 사건의 중심에 있을 때나, 누군가의 개인적인 사건의 한 중심에 있을 때나 치열함의 강도는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 유해진 피디는 이렇게 오늘도 현장을 꿈꾼다.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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