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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3.17 19:00 수정 : 2010.03.21 11:51

너 어제 그거 봤어?

[매거진 esc] 너 어제 그거 봤어?





드라마를 보다가 예기치 않은 부분에서 뜻하지 않게 웃음이 날 때가 있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한데 웃음이 나는 이유는, 첫째 상황이 도대체 앞뒤가 맞지 않아서, 둘째 대사가 손발을 오그라들게 해서, 셋째 컴퓨터그래픽 처리가 미흡해서. 웃음의 조건을 두루 갖춘 드라마 두 편이 화제다. 문화방송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이하 <신불사>)와 한국방송 <부자의 탄생>이다. <10 아시아>(10asia.co.kr) 최지은(사진 오른쪽) 기자와 위근우 기자가 <신불사>와 <부자의 탄생>을 들여다봤다.

설득력 없는 자기계발서 같은 ‘신불사’와 ‘부자의 탄생’
드라마니까 그냥 넘어가주길 기대하는 건 오산입니다

위근우(이하 위) <신불사>는 박봉성 화백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다. 만화에서 주인공인 최강타는 피비린내를 풍기는 괴물 같은 존재다. 세계에서 가장 돈 많고, 가장 싸움도 잘하는 이런 주인공이 과연 드라마에서는 어떻게 그려질지 기대도 걱정도 많았다.

최지은(이하 최) 첫회를 보면 뭔가를 단지 보여주기 위한 장면들이 많다. 시작하자마자 최강타 역의 송일국이 승마를 하는 모습이나 펜싱을 하는 모습은 단지 그가 이런 귀족적인 스포츠를 수준급으로 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이 드라마가 낭패인 지점은 그게 볼거리마저 되지 않는다는 거다.

‘아랍왕자 송일국’ 시청자 놀리는 듯

제작진은 약간의 개연성은 희생해도 스케일을 살리겠다고 했는데 그 의도가 블록버스터급 드라마를 만드는 것이었는지, 아니면 일어날 것 같지 않은 만화적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결과적으로는 후자가 됐다. 100억원이라는 제작비로 <아이리스>를 만들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이 드라마를 <아이리스>보다 <벡터맨>에 가깝다고 느낀다. 첫회에 나온 요트 폭파 신의 조악한 컴퓨터그래픽만 봐도 그렇다. 그 <벡터맨>스러운 부분이 이 드라마의 기묘한 컬트적 매력이기도 하다.

성인을 위한 어린이 드라마 같은 느낌이랄까.

역동적이지도, 멋지지도 않은 승마 신 같은 어설픈 장면이 기묘한 만화적 판타지 분위기를 내는 데 일조한다. 적어도 1~2회에서는 이러한 것들이 일관성 있게 보여졌다. 리얼리티를 포기하면 그만큼에 해당하는 드라마 스스로의 규칙을 지켜가야 한다. 그런 일관성이 계속 이어질지는 미지수지만.

송일국이 아랍 왕자로 분한 장면을 보면서 지금 시청자를 놀리는 건가 싶었다. 수염을 붙이고 선글라스를 낀다고 아랍 왕자가 되는 건 아니지 않나. 제작진의 당당함이 놀랍다. 만화에서 황당한 설정이 용인됐으니 드라마에서도 그대로 용인될 거라고, 이 모든 걸 시청자가 이해해줄 거라고 생각한 것 같다.

<신불사>는 모든 면에서 완벽해 신이라고 불리는 최강타라는 캐릭터의 만화적 판타지를 충족시키기에 부족한 점이 많다. 설득력 없는 장면이 반복되면서 정말 최강타가 신이 맞는지 의심만 커진다. 이야기를 통해 최강타에게서 신이라는 아우라를 느끼도록 하는 게 아니라 최강타를 신으로 만들기 위한 사건만 나열된다. 드라마에서 최강타와 대결구도에 있는 인물은 김민종이 연기하는 황우현이다. 그런데 대결구도를 이루기에 황우현은 너무 매력이 없다. 무슨 고민과 신념이 있는지 모르겠다. 한채영이 연기하는 진보배는 또하나의 민폐 캐릭터에 불과하다.

드라마에서 기자라는 캐릭터를 쓰는 게 너무 안일한데, 이 드라마에서도 그렇다.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위한 장치로 기자를 사용한다.

진보배가 밝히겠다는 진실이 뭔지 모르겠다. 최강타도 그렇다. 만화에서 최강타는 선한 사람이라기보다 복수의 화신이다. 그런 면에 빠져들어 만화를 보게 된다. 이 드라마에서 최강타는 정의로운 척하는데, 대체 그가 말하는 정의가 뭘까. 이 드라마의 인물들에게 진짜 자기 삶이 있는지 궁금하다. 모두가 사건을 위한 장기짝 같다.

드라마에서 황우현이 후배 여기자인 진보배를 사건 현장에 데리고 들어가는 장면이 있다. 그때 강력반 형사가 “알 만하신 분이 기자를 데리고 오면 어떻게 하느냐”는 식의 대사를 한다. 이 드라마에 하고 싶은 얘기다. 알 만한 분들이 왜 이러시느냐고.

<부자의 탄생>도 리얼리티가 있는 드라마는 아니다.

한국방송이 <공부의 신> 다음에 <부자의 탄생>을 내보냈다는 점은 생각해볼 만하다. 학벌을 얘기하고, 그다음에 돈에 대해 얘기한다. 누구나 한번쯤 재벌 아버지가 찾아올 거라는 꿈을 꾼다. 그런 설정에서 시작한 것은 충분히 재미있는 전개가 될 법하다. 문제는 장치는 좋은데 그다음에 계속 힘이 빠진다는 거다.

박봉성 화백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와 착한 부자 얘기를 기획의도로 내세운 <부자의 탄생>. 문화방송·한국방송 제공

최석봉, 실용서를 모아 캐릭터 만들었나

4회까지 이보영이 연기하는 재벌 2세인 이신미에게 닥친 미션을 지현우가 맡은 호텔 직원 최석봉이 도와주면서 완료해내는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됐다.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전개되지 않을까 싶다. 문제는 미션이 만들어지는 건 드라마틱한데 그걸 해결하는 데에는 전혀 힘이 없다는 거다.

해결 방식이 너무 아마추어적이다. 안일하다. 문제를 해결하면서 최석봉은 점점 더 인간적이고 능력이 있는 인물로 포장이 된다.

최석봉이 호텔 동료들에게 부자가 되는 비법을 얘기하는 장면이 있다. 그러면서 호텔의 부자들을 관찰하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게 마치 ‘성공한 사람들의 몇가지 비밀’ 같은 실용서적 수준이다. 최석봉은 그런 부류의 실용서를 모아 캐릭터로 만들어놓은 것 같다. 그런 책을 읽으면서 실제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사람이 몇이나 되나. 그런 정보를 마치 대단한 것인 양 속삭인다.

<공부의 신>이나 <부자의 탄생> 모두 자기계발서 같은 드라마다. 성공에 대한 얘기를 당당하게 하지만 거기에 별다른 고민은 없다. <부자의 탄생>은 돈에 대해 얘기하면서도 자본과 노동, 시장에 관한 부분은 모두 간과한다. 첫회에 이신미가 자기 머리카락을 자르면서 노조 파업을 해결하는 장면이 바로 그렇다.

이신미라는 캐릭터를 인간미는 없지만 비겁한 술수를 쓰지 않는 인물로 그린다. 이건 마치 자본주의에 대한 알리바이와 같다. 게임의 법칙만 공평하다고 모든 게 정정당당한 게임인 것은 아니다. 이신미는 해고하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최석봉을 처음 보자마자 등이 너무 꼿꼿하다면서 자르라고 말하고, 화장실 물을 꼭 잠그지 않은 사람이 누구냐면서 찾아서 자르라고 한다. 직원들의 노동력으로 부가 창출되는 것 아닌가. 재벌들끼리 경쟁해서 돈을 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게 노동의 결과물이라는 걸 모르는 건가.

이신미는 최석봉을 직원이 아니라 사노비로 생각하는 것 같다. 드라마라는 이유로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것들이 보여진다. 잘 만든 드라마와 못 만든 드라마의 차이는 드라마니까 넘어가주기를 기대하는 게 얼마나 많은지에 달려 있다. 앞으로 그런 이신미의 캐릭터가 조금씩 변하겠지만, 변하기 전까지 했던 행동이나 말은 그냥 넘어간다는 것도 문제다.

이신미를 일 잘하는 재벌 2세로, 이시영이 맡은 부태희를 생각 없는 재벌 2세로 설정하고 있지만, 사실 이 드라마에서 최고의 비호감은 부태희가 아니라 이신미다. 지금까지는 ‘이신미 대 부태희’라기보다 ‘이신미 대 최석봉’의 구도다. 최석봉이 자신을 무시하는 이신미를 상대로 자기 자존심을 세울 때 오히려 쾌감이 있다.

성장드라마로 변화하면서 나아지길

이신미와 부태희 사이에 있는 청년사업가 추운석 캐릭터도 너무 평면적이다.

결과적으로 최석봉의 정체성이 중요해진다. 부자가 되기 위해 성공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긍정하는 건 다르다. 아직 드라마의 마지막을 예측하긴 힘들지만 만약 최석봉이 이 모든 걸 이겨내고 좋은 재벌이 된다면, 과연 여기에 공감할 수 있을까. 이 드라마가 자본의 천박함을 보여주려고 했다면 성공한 드라마다. <공부의 신>의 태도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처음에 말했던 주장이 성장드라마로 변화하면서 나아진 부분이 있다. <부자의 탄생>도 그렇게 되길 바란다.

정리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신불사>, 여기에서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진보배가 말에게 다가가서 ‘안녕, 난 보배라고 해. 넌 이름이 뭐니?’라고 묻는 장면이 있다. 사회생활을 하는 그 나이 또래 여자에게서 도저히 찾을 수 없는 태도다. 여자를 바보로 보는 것도 아니고.”(최지은)

“강태호 회장이 하와이 출장을 가서 파티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한쪽에서는 태권도 격파 시범을 하고 한쪽에서는 오고무 공연을 한다. 왜 하와이에서 저러고 있을까, 저 장면을 왜 하와이에서 찍었을까 궁금했다. 이 드라마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과 이어진다. 이 장면이 왜 나올까, 이걸 왜 이 장소에서 찍었을까.”(위근우)

<부자의 탄생>, 이 장면 어이없었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멀쩡한 청년사업가 추운석이 이신미를 위해 빙판 위에서 피아노를 치는 장면이 나온다. 뭘 과시하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누가 그걸 보고 감동하겠나. 가장 상식적인 인물조차도 이런 방식으로 자기의 사랑을 보여준다.”(최지은)

“오성그룹의 모델인 여배우 관련 사건이 나온다. 그녀의 전 남자친구가 둘의 비디오를 공개하려는 걸 막으려고 최석봉이 낚시터에 잠복하다가, 현장에 나타난 그 남자를 잡는다. 왜 그 남자가 그 낚시터에 나타날 거라고 생각했는지에 대한 최석봉의 설명과 그 남자의 멱살을 잡고 하는 최석봉의 대사가 모두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상할 정도로.”(위근우)

정리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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