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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6.01 20:56 수정 : 2016.06.02 10:05

트리니다드의 댄스클럽 ‘카사 데 라 무시카’. 살사를 추는 손님 대부분은 외국인 관광객이다.

[매거진 esc] 노동효의 중남미 아미스타드
쿠바에서 되는 것과 안 되는 것 ②

여행 중이라고 해서 삶의 양식이 달라지진 않는다. 먹고, 자고, 이동하고. 중남미를 여행하는 동안 현지인 친구를 사귀고, 때론 그들 집에서 먹고 자곤 했다. 이동할 땐 북미·유럽 여행자들로 가득한 우등버스 대신 현지인과 스페인어권 히피들이 득실대는 일반버스를 탔다. 볼리비아의 안데스 산맥을 지날 때도, 페루의 사막을 지날 때도, 아르헨티나의 초원을 지날 때도…. 현지에선 최대한 현지인에 가깝게! 그것이 내 여행의 원칙이었다. 그러나 쿠바에선 그 원칙을 고수하기 쉽지 않았다.

쿠바에 온 여행자가 방문하는 도시는 아바나, 비냘레스, 바라데로, 시엔푸에고스, 트리니다드, 산티아고데쿠바, 산타클라라. 몇 개 더 추가되기도 하지만 열 손가락을 벗어나지 않는다. 여행자는 택시나 외국인용 버스인 비아술을 이용한다. 그래서 어딜 가나 만나는 사람은 관광업 종사자와, 같은 처지의 외국인들.

현지인이 타는 옴니 버스(비아술 버스비의 1/3 정도)도 있지만 외국인에겐 허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매표원이 “당신은 외국인이니 비아술 버스터미널로 가라”고 하면 “여행경비가 넉넉하지 않다”고 말할 정도의 스페인어와 누가 봐도 넉넉해 보이지 않을 행색이 필요하다. 이 관문에서 대부분의 한국인은 탈락한다.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가 박힌 옷과 배낭을 보고 “비아술 버스 탈 돈이 없다”는 말을 믿어줄 쿠바인은 없기 때문이다.

비용만 따지면 한국의 일반고속버스 수준에 에어컨도 빵빵한 비아술 버스를 타는 게 안락하다. 그러나 현지인의 생활에 더 가까이 가고 싶다면 옴니 버스터미널 앞을 오가는 합승 밴이나 미니버스를 타는 방법이 있다. 비좁은 좌석에, 옆에 앉은 연인은 연신 키스를 해대고, 한쪽에선 닭이 푸드덕거리고, 경유지에서 내리는 승객을 위해 일어섰다가 앉기를 반복하고…. 그러나 ‘최대한 현지인에 가깝게!’를 고수하려면 감당해야 할 불편이고, 그것이 쿠바인의 삶이다.

쿠바 사람들만 탈 수 있는 옴니버스는 비좁고 불편하지만 쿠바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옴니버스에 닭을 갖고 탄 쿠바 남성.

이성친구 몸 맞댄 불타는 청춘
트워크·페레오 부비부비 춤추면
시가를 손에 든 엄마 얼굴엔
빙긋, 미소가 피어오른다

쿠바에서도 친구 집에서 잘 수 있을까?

스페인어가 서툰 여행자가 쿠바에서 친구를 사귄다는 게 쉽지도 않지만, 친구가 생겨도 결과는 마찬가지. 쿠바에선 외국인이 호텔이나 정부 인증 민박집이 아닌 곳에서 묵으려면 집주인이 정부당국에 신고를 해야 하고, 그에 따르는 세금이 쿠바인의 월급과 맞먹는다. 만약 신고 없이 지내다가 심술궂은 이웃이 당국에 고발하면 집주인은 법정에 서거나 많은 벌금을 내야 한다. 그래서 쿠바 친구 집에서 묵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여기서 ‘거의’라고 하는 이유는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는 표현이 적용되기 때문.

비냘레스 지역을 여행 중 쿠바 젊은이들을 만났다. 요엔젤, 후안, 레이, 나오미, 아메드 등. 친구들이 사는 마을로 따라가 요엔젤의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내 친구는 신고 따윈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경찰이 찾아왔다. 외국인임이 틀림없어 보이는 내 얼굴을 보고 경찰이 소리쳤다. 부에노스 디아스!(좋은 아침) 그러곤 함께 차를 마시며 얘길 나누고 헤어질 땐 작별의 포옹까지 했다. 온 동네가 이웃사촌이거나 친척인 시골 마을. 법은 경직되어 있었지만 우정이라는 가치 앞에서 현실은 말랑말랑했다.

부모님 앞에서 부비부비 춤을 춰도 될까?

하루는 그 친구들과 함께 디스코테카, 그러니까 나이트클럽에 가기로 했다. 토요일 밤 10시, 클럽에 들어서자 인구 2천명이 사는 마을의 모든 청춘남녀가 클럽에 다 모인 것 같았다. 내 친구 레이가 테이블 사이에서 트워크(Twerk: 여성이 자세를 앞으로 굽히고 엉덩이를 격렬하게 흔드는 춤동작)를 하는 여자의 등 뒤에 섰다. 그러자 여자가 엉덩이를 레이의 ‘앞’에 밀착하고 흔들어댔다. 깜짝 놀랐다. 놀란 눈을 하고 있는 날 보더니 그녀가 깔깔깔 웃으며 내 앞으로 왔다. 멍하니 서 있던 내 몸이 강도 7의 지진이라도 만난 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쿠바에서 사귄 친구가 집에서 춤을 추고 있다. 노동효제공

쿠바 하면 살사를 떠올린다. 그래서 관광지의 댄스클럽 ‘카사 데 라 무시카’ 손님 대부분은 외국인이다. 그러나 현지인이 찾는 클럽에서 살사를 추는 젊은이는 드물다. 쿠바에서 살사는 중년 이상 부모님 세대와 외국인 관광객이 즐기는 춤. 젊은이들은 바차타를 추거나 페레오를 춘다. 페레오는 여성의 엉덩이와 남성의 사타구니 부위를 부딪는 선정적인 춤으로 한국에선 부비부비 춤, 영어권에선 그라인딩 댄스라고 한다. 엉덩이를 흔드는 아프리카 여성의 춤동작이 1990년 무렵 카리브의 섬나라 푸에르토리코에서 레게톤(레게와 힙합이 혼합된 스페인어 댄스 음악)과 결합해 남녀가 함께 추는 춤으로 발전했고 바로 옆 섬나라 도미니카공화국, 쿠바로 번져 꽃을 피웠다. 페레오는 곧 여행자들을 통해 중남미 전체로 전해졌고, 미국의 힙합 문화와 접목되면서 전세계로 확산되었다. 2013년 옥스퍼드 출판사가 트워크를 사전에 등재했을 정도. 2016년 상반기 빌보드 싱글차트에서 9주간 1위를 기록한 리애나(리한나)의 ‘워크’(Work) 뮤직비디오를 보면 ‘트워크’와 ‘페레오’를 추는 쿠바 클럽의 분위기를 간접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효 여행작가
일찍이 부비부비 춤을 추기 시작했기 때문일까? 쿠바에선 부비부비 춤을 어두컴컴한 클럽에서만 추는 것도 아니다. 쿠바의 청춘들은 생일이면 친구를 집으로 초대해 하루 종일, 길면 이틀에 걸쳐 마시고 논다. 10대 말부터 20대 청년들은 음악을 틀고 놀다가도 거실에서 부비부비 춤을 춘다. 머리 희끗한 부모님은 소파에 앉아 이성 친구들과 부비부비 춤을 추는 아들이나 딸을 바라보며 빙긋 웃을 뿐이다. 미소 짓는 쿠바 어머니의 손끝에서 시가가 천천히 타오른다. 끊길 듯 말 듯 나른하게 피어오르는 한줄기 연기가 허공에 어떤 문자를 새기는 것 같다. VIVE EL MOMENTO. 비베 엘 모멘토.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으로 바꾸자면, 카르페 디엠, 현재를 살아라!

노동효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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