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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로의 집에 보인, 세대를 초월한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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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노동효의 중남미 아미스타드
32살 차이 나도 동갑내기 같은 파트리쇼와 카를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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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로의 집에 보인, 세대를 초월한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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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영상 한번 볼래?”
알바로네 거실에 놓인 컴퓨터를 들여다보던 파트리쇼가 물었어. 파트리쇼는 거리의 악사. 푸콘의 오이긴스 거리에서 트럼펫을 불지. 그전엔 카지노에서 피아노를 쳤대. 카지노가 불타기 전엔 말이야. 아버지는 코미디 배우,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였어. 예능인을 부모로 둔 파트리쇼는 배우들과도 자주 어울려. 그가 출연한 <8분>이란 작품은 꽤 흥미로웠어.
낮은 말소리만 오가는 은행. 객장의 정적을 깨고 웃음이 터져. 음하하하하, 푸하하하하. 파트리쇼는 8분 동안 쉬지 않고 웃어대지. 그 소리를 배경으로 남녀가 말다툼을 벌이고, 또 한 쌍의 남녀가 객장을 휘저으며 춤을 춰. 은행 직원과 고객은 어리둥절 어쩔 줄 몰라 하다가 파트리쇼가 터트리는 웃음에 전염이라도 된 듯 배를 잡고 웃어대. 파트리쇼와 배우들은 총 대신 웃음으로 자본주의와 엄숙주의를 상징하는 은행의 심장부에 균열을 내는 갱단처럼 보였어.
파트리쇼는 피아노를 전공했지만 트럼펫, 기타, 드럼 등 여러 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알아. 건반악기, 관악기, 타악기, 종류를 가리지 않지. 푸콘의 많은 젊은이가 그로부터 악기 연주법을 배웠어. 말하자면 파트리쇼는 푸콘 음악인의 대부. 그래서 화재로 직장을 잃은 파트리쇼가 트럼펫을 들고 길 위에 섰을 때 절친은 그를 만류하기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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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신문에 난 파트리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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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든지 다른 무대에서 연주할 수 있는데 굳이 길에서 연주할 필요는 없잖아?”
벗이 했던 말이 틀린 말은 아냐. 그는 프로페셔널이었으니까. 그렇지만 그의 마음을 돌릴 순 없었어. 거리로 출근한 날, 파트리쇼는 길에서 트럼펫을 부는 게 재밌다는 걸 알게 되었어. 푸콘에 처음 온 여행자에게 말을 걸 수도 있었고, 연주를 지켜보던 청중과 농담을 주고받을 수도 있었거든. 카지노에서 일할 땐 청중과 소통할 기회가 없었어. 쇼가 시작되면 정해진 시간 피아노 앞에 앉아 정해진 레퍼토리를 연주할 뿐이었지. 파트리쇼는 길에서 연주하는 게 더 좋았어. 고용주도, 업무시간도 정해진 바 없이 좋아하는 레퍼토리를 마음 내키는 대로 연주할 수 있었으니까.
푸콘에 도착하면 누구나 파트리쇼를 만날 수 있어. 매일 그는 오이긴스 거리에서 트럼펫을 불거든. 오전에 잠깐 연주한 뒤 오후 1시면 집으로 돌아가 식사를 하고, 해 질 무렵 선선해진 거리로 나와 밤 9시까지 트럼펫을 불어. 일이 끝나면 알바로의 집에서 저녁식사를 해. 초등학생 딸이 있는데, 이혼한 아내와 지낸다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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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푸콘 오이긴스 거리에서 트럼펫을 연주하는 파트리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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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로는 파트리쇼와의 첫 만남을 기억해. 푸콘에 도착한 ‘금속공예가’이며 ‘페인트공’이며 ‘전기기술자’인 동시에 ‘기타 치는 싱어송라이터’ 알바로가 오이긴스 거리를 걷는데 트럼펫을 불던 파트리쇼가 물었어. “처음 본 얼굴인데 어디서 왔니?” “비냐델마르.” “그 가방에 든 건 기타야?” 두 사람은 합주를 하며 친구가 되었어. 알바로는 푸콘이 마음에 들었고 월셋집을 구해 정착했지.
몇 년 지나지 않아 알바로의 집은 길거리 악사와 공예가들의 ‘사랑방’으로 변했어. 빈부귀천, 교육 정도, 남녀노소, 기타 등등 인간을 위아래로 나누는 구분 따윈 안녕! 저녁이 되면 사람들이 알바로 집으로 모여들었어. 문화인류학자, 대학교수, 가수, 드러머, 수공예가 등등 자연, 예술, 인류를 사랑하는 이라면 누구나 친구가 되었어. 안면만 익으면 동갑내기처럼 대하는 게 중남미 문화이기도 하지만, 알바로가 자아내는 헐렁한 분위기도 한몫을 했지. 밤마다 사람들이 알바로의 집으로 몰려와 새벽까지 떠들고 놀았지만 그는 손님을 내쫓지 않았어. “나 먼저 들어가 잘게. 부에나스 노체스!” 볼키스를 하고 침실로 들어가는 게 고작이었지.
“파트리쇼, 이 곡은 어떤 느낌으로 연주해야 돼?”
파트리쇼의 아버지가 출연한 영화를 보는데 카를로스가 파트리쇼에게 물었어. 카를로스는 건너편 호스텔 주인집 아들. 1995년생으로 1963년생 파트리쇼와 나이 차이가 32년이지만 두 사람은 친구야. 서로 말을 놓는 정도가 아니라 동갑내기처럼 대하지. 한국에서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중남미에선 연장자, 연소자끼리 말을 놓곤 해. 물론 스페인어에 존칭과 존댓말은 존재하지만, 한국과 큰 차이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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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살 차이 나는 친구 파트리쇼(왼쪽)와 카를로스가 연주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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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존댓말·반말은 연장자와 연소자, 갑과 을, 직급의 고하 등등 인간관계에서 ‘위아래’를 구분하지. 중남미 스페인어권에서는 인간관계의 ‘거리’를 구분해. 가령 가까운 사이면 스무살 차이가 나더라도 서로 말을 놓기도 하고, 멀거나 초면이면 어린 상대에게도 존댓말을 하는 식이지. 물론 페루, 볼리비아에선 부모님 연배 이상이면 존댓말 하는 게 예의고, 파라과이에선 연장자, 상사, 고객에게 존칭을 붙이는 관습이 있긴 해. 하지만 그 밖의 나라에선 친구 아버지와 친구 먹는 것도 흔한 일이야. 함께 당구 치다가 친구 아버지가 실수를 하면 “호세! 괜찮아. 다음 차례에 잘하면 되지!” 아들 친구가 친구 아버지의 어깨를 치며 위로하는 게 이상하지 않아. ‘다른 문화 사이에 차이는 있지만, 우열은 없다’는 레비스트로스의 의견에 동의한다면, 어떤 관습이 더 낫다고 말할 순 없을 거야.
중남미에서도 존댓말 쓰지만
그건 관계의 ‘상하’ 아닌 ‘거리’
서로 동등하고 편히 대한다면
세대간 문화도 섞이지 않을까
다만 내가 중남미를 여행하면서 의아했던 게 있어. 연장자가 결정권을 갖고, 인간관계에서 상하를 구분 짓는 관습이 있으며, 윗사람에게 존댓말을 하는 게 ‘예의’라고 강조하는 나라일수록 ‘약자에 대한 착취’가 더 심하더라는 거야. 그런 나라에선 아동 노동을 비롯해 약자를 착취하는 광경을 숱하게 볼 수 있었어. 경제수준과 관련 있다고 여길 수도 있겠지.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 가령 한국의 경우 세계경제대국 20위권에 든 지가 10년이 넘었지만 곳곳에 여성, 아이(노동 대신 강도 높은 학업), 비정규직, 을에 대한 착취가 일상화되어 있잖아. 그 이유를 ‘일상의 모든 인간관계에서 존댓말·반말을 통해 상하를 구분 짓는 관습’에서 찾는다면 억지일까.
프랑스 혁명 이후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지니고 태어나 살아간다’는 인권선언이 세계로 퍼져나갔어. 그러나 존재의 집이라 불리는 ‘말’에 똬리 틀고 있는 불평등을 깨지 않고 평등한 인간관계가 가능할까? 조선의 선비끼린 나이 차이가 나도 동등하게 대하고, 형제 사이에도 존댓말을 하는 풍습을 갖고 있었다지. 그럼 반말은 누구에게 하던 말일까? 문득 최순실이 손짓으로 까딱하자 급히 제 와이셔츠에 손전화를 닦아 건네던 청와대 행정관이 떠올라. 봉건시대에도 일어나지 않을 일이 터지는 바람에 시끄러운 한국, 근데 최순실 아니라 대통령에게라도 시민이 머리를 조아리거나, 두 손 모아 악수를 하거나, 손전화를 제 옷에 닦아 건네야 한다면 그거, 봉건 아닌가?
알바로의 집은 늘 젊은이들로 들썩였어. 십대 말에서 스무살을 넘긴 젊은이들이 낮이고 밤이고 들락거렸지. 마흔 넘은 알바로를 친구로 여기는 젊은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한편 부럽더군. 한국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이잖아. 마흔만 돼도 젊은이들로부터 꼰대 취급 받고, 식탁 가운데 앉아 대화를 독점하던 연장자가 자리를 비워줘야 또래 젊은이의 이야기가 왁자지껄해지는 한국. 물론 젊은이와 잘 어울리는 연장자도 있긴 해. 흔히 멘토라고 불리며 수직관계에서 ‘위’를 차지하지. 근데 한 사람은 존댓말 하고, 한 사람은 반말을 하(거나 반말을 해도 된다고 여겨지)는 관계가 진정한 친구에 이를 수 있을까?
알바로의 집에 모여든 이는 나이도 직업도 국적도 달랐지만 모두 동갑내기 친구 같았어. 그런 분위기가 어떤 거냐고? 한국인은 서로 만나면 먼저 나이를 묻지. 가장 반갑고 편할 때가 언제일까? 동갑내기를 만날 때지! 처음 만나도 진작 알던 동무처럼 편해서 금세 말을 놓고, 심금을 털어놓지. 동갑내기처럼 대한다는 건 그런 거야. 연장자들은 잃는 게 많겠지. 그러나 얻는 것도 많을 거야. 서로가 자신의 이야기를 동갑내기에게 하듯 편히 나눌 수 있다면, 공기의 대류현상처럼 세대 간 문화도 아래, 위로 자연스레 오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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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음악을 연주하는 알바로와 카를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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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쇼와 알바로가 전해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주억거리던 카를로스가 파트리쇼의 반주에 맞춰 기타를 치기 시작했어. 스물두살 카를로스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불리던, 민중가수 빅토르 하라의 <선언>을.
내가 노래하는 건 노래를 좋아하거나/ 좋은 목소리를 갖고 있어서가 아니야/ 기타도 감정과 이성을 갖고 있기에/ 난 노래하는 거야./ 내 기타는 대지의 심장과 비둘기의 날개를 갖고 있지/ 성수를 뿌리듯 기쁨과 슬픔을 축복해/ 그럴 때 내 노래는 고귀해지지/ 비올레타가 말한 것처럼/ 봄의 향기를 품고, 열심히 노동하는 기타.
글·사진 노동효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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