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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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허지웅의 설거지
나는 어쩌다 ‘처음’으로 복구하는 데 매달리게 됐나
이건 청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게 하고
사람을 비겁하게 만든다
실패한 관계는 대개 그랬다” 언제부터 주변을 정리하고 깨끗하게 유지하는 일에 강박을 느끼게 되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별다른 계기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스무 살 이후로 계속 혼자 살았으니 자연스레 그렇게 된 게 아닐까 싶다. 뭔가를 깨끗하게 만들어놓고 내심 기뻤던 첫 번째 기억은 설거지였다. 초등학생이었다. 엄마가 외출한 사이 설거지를 해놓고 싱크대를 닦았다. 행주로 물을 훔쳐내자마자 생각보다 쉽게 광이 올라와서 정말 신이 났다. 엄마가 기뻐해주어서 내심 흡족했다. 그 뒤로 몇 시간 동안 싱크대 앞을 서성대면서 아버지나 동생이 사용하고 나면 바로 뒤이어 다시 닦아놓고는 생색을 냈다. 처음으로 완벽하게 청소를 했다, 는 실감을 한 건 대학생 때였다. 고시원 쪽방에 살면서 청소를 게을리하는 게 가능한 일인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나는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에 대해 알고 있다. 냉장고를 고시원에 가져가면 된다. 대체 그 책상을 어떻게 방에 넣었을까. 문을 열자마자 정면에 보이는 책상이 방의 삼분의 일을 차지하며 한쪽 면을 온전히 가리고 있다. 잘 때는 의자를 책상 위로 올려놓고 다리를 그 안에 집어넣어야 한다. 두 팔을 벌리는 건 불가능하다. 옷이나 가방은 벽에 걸어둔다. 창문도 없다. 요컨대 남아도는 공간이 없다는 이야기다. 방이 조금이라도 더러우면 그건 다 내 몸에 묻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옷에 묻는다. 세탁기가 공용이라 빨래를 자주 하는 것이 곤란해서 나는 옷 대신 방을 최대한 깨끗하게 유지하는 쪽을 택했다. 매일 두 번씩 천장까지 닦았다. 이후로 이사를 여러 번 다니며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 크고 쾌적해졌다. 하지만 고시원에 살 때만큼 내가 사는 공간에 대해 완벽하게 알고 있었던 적은 없었다. 청소란 그 공간을 완전히 이해하게 만든다. 지금도 집 청소는 내가 한다. 써놓고 보니 당연한 말이다. 나는 인류가 자기 혼자 힘으로 청소할 수 없는 크기의 집을 소유하면서부터 파멸을 향한 과잉이 시작되었다고 믿는 사람이다. 부동산 취득 자격면허 같은 걸 만들어서 시험장에서 혼자 청소할 수 있는 최대 평수를 딸 수 있게 만들면 좋겠다. 사람의 욕심을 다스릴 수 있는 가장 기능적인 목적의 면허가 아닌가. 이 집을 사겠습니다. 아이고 사장님 안목이 역시 남다르십니다, 그럼 면허를 보여주세요. 아니 2급 보통이군요. 사실 수 없습니다, 나가주세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청소에 관한 질문을 자주 받게 된다. ‘언제부터 그랬어요? 왜 그렇게 됐어요?’라는 질문에 말문이 막히는 경험을 몇 차례 겪었다. 나는 왜 청소를 할까. 대충 결벽증이라고 매번 둘러대지만 솔직히 그건 아닌 것 같다. 손은 자주 씻는 편이지만 그건 내가 만지는 물건들, 특히 키보드에 기름기가 남을까봐 그러는 것이다. 원고를 쓸 때 키보드가 끈적거리면 멀쩡한 문장도 비문이 된다. 키보드에 묻은 기름기는 키캡을 전부 분리해 닦아야 하기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나는 남의 먹던 숟가락도 쓰고 내 살보다는 남의 살을 훨씬 더 좋아하며 타인의 청결함을 두고 그 사람을 판단하지도 않는다. 깨끗하게 보이는 것보다는 어울리는 옷을 입는 게 더 좋아서 같은 옷을 여러 벌 사놓고 돌려 입는다. 그게 다 결벽증 증상이라고 하면 뭐 별로 할 말은 없지만. 나는 내가 무언가를 처음 상태로 되돌려놓는 일에 지나치게 매달린다는 결론을 내렸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는 언제든지 눈앞의 이걸 본래의 상태로 복구시킬 수 있다는 생각으로부터 안정감을 찾는 것 같다. 그러나 여태 살아보니 본래 상태로 온전히 복구시킬 수 있는 거라고는 컴퓨터 복원과 청소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청소에 매달린다. 청소를 하면 회복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결코 되돌릴 수 없는 것들을 붙잡고 되돌려지지 않는다는 사실 앞에 늘 너무 오랫동안 분개했던 것 같다. 특히 인간관계가 그랬다. 거기에는 어떤 오해나 실수가 있더라도 어찌됐든 돌이킬 수 있어야만 진짜 우정이고 진짜 사랑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진짜 사랑과 진짜 우정이란, 진짜와 가짜를 나누는 서로 다른 논리들 앞에서 유명무실해진다. 사실 언제든 돌이킬 수 있다는 믿음은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 않게 하고 결과적으로 사람을 좀 비겁하게 만든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최소한 내가 실패한 관계들은 대개 그랬던 것 같다. 결국, 우리는 모두 순순히 누군가의 과거가 될 용기가 필요하다. 돌이키고 되돌리는 것에 대한 집착은 좀 느슨하게 내버려두고 말이다. 청소는 이제 좀 지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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