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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0.26 19:22 수정 : 2016.10.26 19:50

픽사베이

[ESC] 헐~

픽사베이
뭔가 찝찝했다.

지난 일요일, 가족 모임이 있어 집을 나서면서 주머니를 뒤졌다. 없었다. ‘다시 집으로 들어가 가져올까’ 잠시 고민했다. 반려견 ‘호두’가 눈에 밟혔다. 겨우 떼어놓고 나왔는데, 다시 들어갔다 또 두고 나오면 견심도 상처를 받는다.

“에이, 그냥 가자.” 일요일이다. 상시 대기해야 하는 사회부 기자도 아닌데, 하루쯤 스마트폰 없다고 뭔 큰일이 생기겠나 싶었다. 점심을 먹을 때까진, 버틸 만했다. 식사를 마친 뒤 비극은 시작됐다. 아내가 쇼핑에 나섰다. 백화점을 한 바퀴 돌았다. 아내는 힘이 솟는 듯했다. 그녀를 보좌하는 나는 달랐다. 없는 걸 알면서도 손은 자꾸 호주머니를 헤집고 다녔다. ‘없다, 없어.’ 혼자 중얼거렸다.

아내의 발걸음은 백화점 근처, 파충류 이름을 한 패스트패션 매장으로 이어졌다. 아내는 신중하게(그러니까, 오래오래) 옷 6벌을 골라 피팅룸으로 들어갔다. 아내 눈치 보느라 참아온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는 시간이었다.

피팅룸 밖은 지친 남자들로 북적였다. 여성의 가방을 들고 있는 건 같은 모양새였지만, 나의 결핍은 더 절실해졌다. 그들은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있었다.

한 외국인 남자와 눈이 마추졌다. 그의 눈빛은 “힘들지? 다 알아. 좀만 버텨”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눈웃음으로 응대했다. ‘다시는 스마트폰을 두고 외출하지 않으리라!’ 또 빈 주머니를 만지작거렸다.

“핏이 엉망이야. 아까 백화점에서 봤던 물건 해외직구해야겠어.” 아내의 말에 경악했다. 총 5시간 쇼핑, 아무것도 없다고…. ‘오 마이 갓, 아내의 쇼핑은 나의 마음을 막 해치지!’ 하지만 아무 말도 못했다. 평화를 위해.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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