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7.06 10:55
수정 : 2017.07.06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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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의 신선한 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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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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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의 신선한 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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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덜커덩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시계는 새벽 1시34분. 밤이 아파트에 숨죽인 채 깔려 있었다. 머리맡에 있는 디지털시계를 무심결에 쳐다봤다. ‘1’, ‘34’가 붉게 빛나고 있었다. 사람의 뼈에서 퍼져 나오는 인광에 버무린 핏덩이 같았다. 온몸의 세포가 쭈뼛쭈뼛 일어났다. ‘이 괴기스러운 소리는 뭐지.’ 살포시 이불을 걷고 살금살금 방문을 열었다. 소리의 진원지는 부엌이었다. 냉장고의 푸른빛이 물감처럼 번져 주위를 삼키고 있었다. 식탁은 본연의 색을 잃고 파르르 떨고 있었다. 남자는 화염에 휩싸인 듯 온몸이 뜨거워졌다. “으악” 남자는 뒤로 나동그라졌다. 활짝 열린 냉장고 문 앞에서 머리카락을 산발한 여자가 우걱우걱 뭔가를 씹고 있었다. 입술은 온통 피범벅이었다. 남자를 쳐다보는 눈동자가 번쩍번쩍 빛이 났다. “어, 깼어? 왜 더 자지.” 아내였다. 남자는 말문이 막혔다.
몇 년 전, 내가 연출한 이 기괴한 장면은 오로지 음식기자이기 때문이다. 아작아작 씹어 삼켰던 건 도축된 지 얼마 안 되는 소의 간이었다. 전날 마장동 축산물시장을 취재하면서 신선한 간의 맛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는 발골 장인의 말을 믿고 몇 덩이를 샀더랬다. 덩어리가 큰데다 이미 배는 남산만한 터라 시식은 뒤로 미루고 냉장고에 고이 모신 상태였다. 하지만 잠자리에 들고서도 “최고 신선한 상태에서 먹어야 제맛을, 제맛을, 제맛을”이라는 발골 장인의 목소리가 에코처럼 무한 반복되고 있었다. 벌떡 일어났다. 물론 그 평가는 고스란히 기사에 남았다.
지금도 종종 혀의 기억이 내게 말한다. ‘송곳니로 박아 뚫고 조각내 먹은 그 간, 어디 있어? 그 기분 좋은 비릿한 맛 또 보고 싶어.”
박미향 ESC 팀장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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