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3.21 20:20
수정 : 2018.03.21 20:24
[ESC]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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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여름 전남 구례에서 99살 외할머니와 막 돌이 지난 외증손자의 첫 대면식이 있었다. 나이 차이가 무려 97살. 홍종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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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연재물 ‘보통의 디저트’에 실린 내용이 ‘어쩜 나랑 똑같을까’ 하고 정말 속으로 ‘헐~’을 열번은 더 외쳤더랬다. 우리 외할머니에 대한 나의 추억을 공유한 또 다른 손자가 있었나 의심을 할 정도로 놀라웠다. 혹시 글을 쓴 김보통 작가가 나의 도플갱어인가 싶었다.
일단 나의 이런 의혹에 대한 증거를 제시해보자면 하나, 친할머니가 아닌 외할머니라는 점. 둘, 처음으로 돈이란 걸 벌어서 ‘베지밀’ 한 박스와 ‘아맛나’ 하드, 그리고 ‘야쿠르트’ 다섯 줄을 사서 내민 것. 셋, 외할머니가 병원에서 일어서다 넘어져 골반이 부러진 것. 넷, 그날 캠코더가 아닌 카메라로 외할머니를 찍었던 점. 그리고 마지막 다섯째는 외할머니가 그해 결국 일어나시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가셨다는 것도 동일했다.
그 글을 읽고 난 후, 곧바로 회사 컴퓨터의 폴더란 폴더는 모두 뒤지기 시작했고, 40분 만에 사진 한 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때 그날의 사진이었다. 다정한 외할머니가 이미지 픽셀 사이에서 흐릿하게 웃고 있었다. 클릭과 동시에 사진이 열렸는데, 순간 먹먹해진 가슴이 날 조여왔다. 제아무리 슬픈 영화를 봐도 눈물 한방울 아니 충혈조차 없었던 철면피(?) 같은 나다. 순간 심장이 오그라들고 동공 속 안압이 올라가더니 눈동자 주변이 빨개지면서 뭔가가 핑 돌았다. 눈과 뇌 사이에서 미묘한 지진이 감지됐고, 그 공간으로 2012년 여름의 그날이 비집고 들어왔다. 그러곤 잠시 진공 상태에 빠져들었다. 사실 넘어지시지만 않았어도 100살은 거뜬히 사셨을 텐데 안타깝게도 99살에 외할머니는 노환을 이겨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징허게 보고 싶네. 외할무니~!”
소중했던 기억을 소환해준 김보통 작가에게 감사드린다. 다음에 소주 살게요.
홍종길 기자 jongg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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