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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9.05 21:12 수정 : 2018.09.06 08:00

장미 허브. 이정연 기자

헐~

장미 허브. 이정연 기자
잘 죽인다. 성질은 못 죽이는 데 이것만은 잘 죽인다. 식물 말이다.

나무와 숲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자랐던 터다. 나무와 풀이 가득한 곳에 비라도 뿌려 그 내음이 한껏 깊어질 때면 ‘꽃향기만 맡으면 힘이 나는 아기 자동차 ’처럼 나무와 풀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상쾌한 힘이 솟는다. 최근에 이사를 해 옮겨 온 동네의 가장 좋은 점을 꼽으라면 역시 높이 솟은 나무들이다. 30년이 넘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다. 단지 안 은행나무 키가 10m는 족히 넘는다. 복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스팔트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다.

식물을 좋아한다. 그런데 나는 죽음의 손이다. 식물을 잘 죽이는 손이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식물) 죽이는 이야기’다. 식물을 집에 들여 온전히 건강하게 키워본 적이 없다. 이사를 하면서 또 죽였다. 친구가 나눠준 장미 허브가 7, 8월 건강하게 자랐다. 희망이 생겼다. 제일 굵은 줄기의 아랫부분이 나무처럼 변하는 ‘목화’ 현상까지 볼 수 있었다. 장미 허브라는 풀에 가까운 식물이 나무처럼 된다니! 설다. 그러다 이사를 하고 3일이 정신없이 흘렀다.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집안 정리에 지쳤다. 겨우 때를 뺀 거실 바닥에 쓰러지듯 누웠다. 그리고 거실의 구석에 발견된 그것. 생기를 모두 잃어버린 장미 허브였다.

처음이 아니다. 키우기 쉽다는 율마는 갈색으로 변해 떠나갔고,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에 주로 산다던 선인장(아주 복잡한 이름이었고, 기억을 해내기 어렵다)은 하얗게 변하며 그 생을 마쳤다. 내 집은 사막보다도 극한의 생존 환경이었던 것일까.

그런데도 ‘초록이’와 함께 살아보고 싶은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옮겨 온 집에는 햇빛이 깊고 길게 들어온다. 다시 한번 도전을 해볼까 고민이다. 그러다 또 ‘(식물) 죽이는 이야기’를 써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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