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0.23 20:47
수정 : 2019.10.24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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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 목에 건 아이②. 김선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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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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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 목에 건 아이②. 김선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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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①(4살)은 언어의 힘을 배우고 있다. 아이는 잠들기 전 기습적으로 엄마에게 속삭인다. “공주~~님~~~” 난 그때 처음 보고야 말았다. 파안대소, 얼굴에 코스모스처럼 활짝 피는 미소를. 그럴 때마다 엄마는 아이①을 끌어안고 얼굴을 비비며 한바탕 ‘난리부르스’를 춘다. 아이①은 그 말의 위력을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다. 아무리 투정부리고 떼를 쓰더라도 단 한 마디(공주님)로 엄마를 녹여버릴 수 있다는 걸.
그 모습을 본 어머니(와이프의 시어머니)와 와이프의 대화. “지금이야 저러지. 나중에 크면 누구한테 공주님이라고 하려나?”(웃음) “네? 어머니, 어머니의 아들(나)한테 ‘공주님’ 소리 들어본 적 있으세요?”(정색) “아니.” “어머님은 이게 어떤 기분인지 잘 모르시죠?”(대화 끝)
아이②(5살)는 무생물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며칠 전 아이는 소풍 가서 산꼭대기에 올라야만 주는 ‘유치원 금메달’을 받아왔다. 엿새째 집안에서나 밖에서나 늘 금메달을 목에 걸고 있다. 산에서 주운 나무막대기도 매일 들고 나갔다가 집에선 신발 밑에 고이 모셔둔다. 지난 주말 결혼 5주년을 맞아 가족 사진을 찍으러 갔다. 차에서 잠든 아이 목에서 슬쩍 금메달을 빼놨다. 금메달 걸고 사진 찍겠다고 고집부릴 게 뻔했기에. 아이는 눈뜨자마자 귀신같이 외쳤다. “금메달 내놔.” 헐.
저녁 식사 자리, 부부는 결혼 생활에 관한 소회를 나눴다. 와이프는 “나한테 좀 잘해”라는 말로 갈음했고 난 “아이①한테 하듯 날 대해 봐”라고 응수했다. 어디선가 코웃음 소리가 들렸다. ‘어른들의 언어는 힘이 없고 생물을 사랑하는 법조차 이젠 까마득하구나.’
김선식 기자 kss@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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