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김민철의 가로늦게
엉뚱한 길 안내가 선물한, 신기하고 따뜻한 ‘구례 스피릿’
구례 록 페스티벌. 김민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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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티벌에 가려고
경찰에 고개를 숙이는 건
그 정신을 어기는 것 같았다” 록 페스티벌이 열리기 하루 전, 구례에 도착했다. 일주일에 딱 하루, 금요일에만 연다는 식당에서 순대국밥을 먹었다. 식당 이름은 분명 ‘한우’였는데, 메뉴엔 ‘순대’만 있었다. 신기한 식당이었다. 택시를 타고 사성암에 가자 말했다. 유독 많은 친구들이 추천한 곳이었다. 택시 기사님은 아예 주차를 하고 우리를 따라 사성암에 오르셨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비경을 찍겠다며, 자꾸 내 카메라를 빌려가셨다. 그리고 정체불명의 사진들을 가득 담아주셨다. 바위 모서리, 바위 사이 하늘, 길쭉한 바위틈에 끼어서 어색한 포즈로 서 있는 나, 역광으로 하나도 안 나온 우리 부부 얼굴까지. 아저씨는 예술을 하셨다. 내 카메라로. 신기한 택시 기사님이었다. 신기한 구례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그만두도록 하자. 이번 여행의 목적은 구례 록 페스티벌이니까. 어쨌거나 우리는 페스티벌에 늦지 않도록 서둘러 구례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행사장까지 가는 버스표를 구매하면서 창구 안의 직원에게 물었다. “어디서 내리면 돼요?” 직원은 귀찮아하며 대답했다. “기사님한테 물어보세요.” 그때 내 뒤에 서 있던 아주머니가 내 어깨를 톡톡 치며 말했다. “저도 록 페스티벌 가요. 저 내리는 곳에서 내리시면 돼요.” 구례에 사는 분이었다. 역시 나는 여행 운이 좋아, 라고 생각하며 얼른 화장실부터 다녀왔다. 쭉 늘어선 버스들 중에서 어느 버스를 타야 하나 둘러보고 있는데, 작은 버스 창을 열고 아주머니가 나를 불렀다. “이 버스 타시면 돼요.” 마치 친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나와 남편은 그 버스를 향해 뛰었다. 서둘러 버스에 올라 아주머니 옆자리에 앉았다. 아주머니는 중학생 정도 된 것 같은 딸과 함께였다. 갑자기 동행이 생겼다. 지리적 감각이 0을 향해 수렴하는 남편이 내게 물었다. “얼마나 가야 해?” “얼마 안 걸릴 거야. 여기서 쭉 직진하면 행사장이거든.” 느긋하게 앉아서 창밖 풍경을 봤다. 버스가 우회전을 하고, 좌회전을 하고, 그러니까 방향을 틀 때마다 다른 풍경이 보였다. 으응? 이건 뭐다? 분명 지도에서는 직진 코스였는데? 다른 길은 없었는데? 마음속에 자라나는 불안감에는 지리산의 호방함으로 대응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버스는 택시가 아니니까!’ 본격적으로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든 건 버스를 탄 지 30분도 더 지났을 때였다. 버스는 이제 본격적으로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원래 이렇게 산을 넘는 거야?”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뭔가 잘못된 것 같아.” 그러고 보니 50분에 출발한다던 버스가 45분에 출발한 것부터 이상했다. 차 안에 우리 빼고는 다들 연세가 지긋하신 것도 이상했다. 아주머니의 눈빛도 거세게 흔들리고 있었다. 아주머니의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나. 하지만 계속 지켜볼 순 없었다.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기사님에게 물어봐야 하는 게 아닐까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아주머니는 그러고서도 한참을 망설였다. 나의 끈질긴 눈빛에 마침내 아주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기사 아저씨에게로 갔다. “기사님, 이거 ‘이사’로 가는 버스 아니에요?” “‘이사’로 가는데 왜 이 버스를 탔어요. 이건 그리로 안 가요. 에헤이. 큰일이네.” 아저씨의 설명에 따르면 우린 완전 잘못 탄 거였고, 완전 큰일 난 거였고, 첫 공연은 이미 물 건너간 거였고, 그래도 우선은 여기서 내려야 하는 거였다. 여기서 내린다고 택시가 있다는 보장은 없는 거였고, 당연히 읍내에서 여기까지 택시를 불러야 하고, 택시를 타고 록 페스티벌에 가야만 하는 거였다. 우선은 버스에서 내렸다. 경찰서 앞이었다. 아주머니는 연신 나에게 미안하다 말하고, 나는 연신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실은 괜찮지 않았다. 아주머니 이젠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요. 우리 록 페스티벌에 갈 수는 있는 걸까요. 아주머니 저희는 이거 보러 서울에서 왔어요. 내 마음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아주머니가 갑자기 발걸음을 재촉했다. “경찰한테 태워달라고 말해볼게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주머니의 딸도, 우리도, 모두 멈칫했다. 아주머니가 이젠 경찰서에 들어가겠다고 말하니까. 무슨 잘못도 안 했는데. 제 발로. 아무 잘못도 안 했으니까 경찰이 태워줄 리도 없는데. 남편과 나는 밖에 서 있었다. 이젠 될 대로 되라, 하는 심정이었다. 그러고 보니 동네 어귀에 있는 백반집도 괜찮아 보였다. 이 동네 이름도 몰랐지만 그냥 여기서 밤늦도록 술이나 마실까 싶었다. 록은 원래 저항하는 거니까. 록 페스티벌에 가려고 경찰 권력에 고개를 숙이는 건 뭔가 록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 같으니까. ‘진짜 가지 말까?’를 진지하게 논의하고 있는데 경찰서 문이 열렸다. 아주머니가 나왔다. 경찰 아저씨와 함께. “아이고. 일행이 더 계셨네.” 경찰 아저씨는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 넷을 태웠다. 남편은 앞에 타고, 여자 셋은 뒤에 탔다. 갑자기 마음이 두근거렸다. 으아! 나쁜 짓도 하나 안 하고 경찰차를 다 타보다니! 쇠창살이 있는 차를 다 타보다니! 진행요원들의 경례를 받으며 행사장 입구까지 올라가다니! 수능시험에 늦은 것도 아닌데! 나는 방금 전의 록 스피릿을 다 잊어버리고 그만 권력에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경찰차를 좋아해버리고 만 것이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순수한 마음’에서였다. 마지막으로 경찰 아저씨가 말했다. “뒷자리 분들은 제가 문 열어드려야 내리실 수 있어요.” 하아. 그런 거였다. 범인이 차 문을 열고 도망갈 수도 있는 거니까. 경찰차 뒷자리엔 손잡이가 없다. 경찰 아저씨가 친절하게 문 열어주지 않으면 내릴 수가 없는 거였다. 그리고, 친절한 그 아주머니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신기한 경찰차는 경험할 수가 없는 거였다. 그런 거였다. 그 밤, 신기한 구례의 록 스피릿은 따뜻하기만 했다. 김민철/카피라이터·<모든 요일의 여행>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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