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김민철의 가로늦게
언제나 뒤늦게 오는, 세상 모든 깨달음의 소중함
쇼팽, 에디트 피아프, 짐 모리슨 등이 잠들어 있는 프랑스 파리 공동묘지 ‘페르 라셰즈’의 조각상. 김민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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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을 동동 구를 필요는 없다
가로늦었다고
모든 게 끝난 건 아니니까 아니나 다를까, 그렇게 선택한 철학과에 나는 금세 실망해버리고 말았다. 철학이나 할 것이지 왜 저렇게나 술을 마실까, 왜 저렇게나 딴짓일까, 이 정도의 대학에 오려면 쟤들도 어지간히 공부를 잘했던 학생들일 텐데 왜 저렇게나 한심할까. 굳이 설명하자면 대학 생활에 실망을 한 것이고,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그냥 학교에 적응을 잘 못한 것일 텐데, 그때는 그 사실도 몰랐다. 모든 대학생들이 신입생이 들어왔다는 핑계로,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는 핑계로, 그저 날씨 핑계로 3, 4월엔 미치도록 술을 마시고, 미치도록 토하고, 경쟁하듯 미친 짓을 한다는 그 당연한 사실도 나는 몰랐다. 그냥 철학이 한심한 거라고 판단을 해버렸다. 고작 한 학기 만에. 뭘 배웠다고. 뭘 이해하기나 했다고. 그래서 나는 이따위 말을 지껄이며 재수를 선언했다. “이렇게 밥 빌어먹는 전공은 못하겠어.” 경영학과를 가야겠다 싶었다. 밥 빌어먹는 공부 말고, 밥 버는 공부를 해야겠다는 판단이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날 짐을 쌌다. 다시 이 자리로는 돌아오지 않겠다며 대구로 내려갔다. 바로 재수학원에 등록했다. 공교롭게도 처음 학원에 간 날이 모의고사 치는 날이었다. 한 학기 동안 마신 술에 근의 공식도, 가속도의 법칙도 다 희석되어버렸다 생각했는데 성적이 그럭저럭 나왔다. 서울 물을 좀 먹다 내려오니, 재수학원에 있는 남자애들은 다 시시해 보였다. 물론 그들의 눈에도 난 참 시시했을 것이다. 피차 그러니 공부하기 참 좋은 환경이었다. 때마침 대구의 삼성 라이온즈가 플레이오프에 올라가고, 한국시리즈까지 넘어 우승을 했다. 저녁마다 코찔찔이 남자들은 전부 티브이(TV) 앞에 매달려 있었다. 공부하기 참 좋은 환경이었다. 수능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경영학과를 가기엔 부족한 성적이었다. 대신 더 좋은 학교의 철학과에는 갈 수 있는 성적이었다. 입시 원서를 쓰며 ‘정말 내가 경영학과에 가고 싶은 건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실은, 딱히 그렇지는 않았다. 경영학과를 간다고 정말 돈을 벌 수 있는 건가? 그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제 와서 다른 과에 지원할 용기가 내겐 없었기 때문이다. 용기? 그렇다. 나는 그때 아무도 나한테 관심 없다는 걸 몰랐다. 내가 한 말을 모두가 기억하고 있다고 착각했다. 그래서 내가 내뱉은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있는 확신, 없는 확신 다 끌어모아 경영학과에 지원을 했다. 그리고 나는, 똑, 떨어져버렸다. 가로늦게 방황이 시작되었다. 그 겨울 나는 수시로 부산 해운대에 갔다. 겨울 해운대를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 있다가 대구로 돌아왔다. 내가 한심하다고 생각했던 그 선배들처럼 술을 마셨다. 답은 하나였다. 다시 원래 학교로 돌아가는 것. 생각만 해도 쪽팔려 죽을 것만 같았다. “생각해보니 밥 빌어먹는 것도 괜찮을 것 같군요”라고 말해야 하는 걸까. “역시, 학문은 기초부터 탄탄히 해야죠”라고 말하는 게 나을까. 아니, 그냥 닥치는 게 나을까. 다시 서울로 왔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자취방을 구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대학생이 되었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수업에 들어갔다. 첫 수업은 철학과 수업이었다. ‘철학의 이해’였나, ‘철학의 기초’였나, 여하튼 철학은 쥐뿔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열린 초보 철학 수업이었다. 그리고 그 수업을 마치고 나오자마자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철학과 진짜 나랑 잘 맞는 것 같아! 완전 재미있어!” 엄마는 내 이야기를 한참이나 듣더니 한마디를 했다. 딱 한마디만 했다. “니 그 전공 싫다고 재수까지 한 거 아니가?” 그렇다. 나는 늘 가로늦게 그 난리였다. 남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는데 나 혼자 가로늦게. 남들은 이미 다 잊어버렸는데 나 혼자 가로늦게. 밤늦은 ‘이불킥’을 나 혼자 가로늦게. 좀 진즉에 알았더라면 그 모든 시간이며 그 모든 돈이며 그렇게까지 허비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꼭 머리를 세게 박고 나서야, 이마가 잔뜩 부어오르고 나서야, 아, 여기 벽이 있었군, 돌아가야 하는 거였군, 이라는 깨달음을 얻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만 가로늦게 알았다고 발을 동동 구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우리 모두가 어느 정도는 가로늦게 세상을 알아가고 있으니. 가로늦게 배후를 알게 되고, 가로늦게 실세를 알게 되고, 가로늦게 학교에 안 가고도 학점 받는 방법을 알게 되고, 가로늦게 비아그라의 다른 기능도 알게 되고, 가로늦게 4%의 의미도 곱씹게 되고, 가로늦게 이것을, 저것을, 그것을 끝도 없이 알아내고 있는 중이니 말이다. 가로늦긴 했지만 가로늦었다고 모든 게 끝나버린 건 아니니까. 김민철 카피라이터·<모든 요일의 여행>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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