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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인 짝사랑에 종지부를 찍게 만든 남자. 김민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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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김민철의 가로늦게
책임지지 않아도,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감정에 파문을 일으킨 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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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인 짝사랑에 종지부를 찍게 만든 남자. 김민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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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도 전공이 있다. 눈빛만 마주쳐도 반하는 게 전공인 사람도 있고, 가슴앓이가 전공인 사람도 있다. 이별이 전공인 사람도 있고, 양다리 또는 문어발식 사랑이 전공인 사람도 나는 알고 있다. 유난히 오래가는 사랑이 전공인 사람도, 유난히 짧은 연애가 전공인 사람도 있다. 나는, 짝사랑이 전공이다.
5살 때부터 남자친구 혹은 여자친구가 있는 요즘 어린이들이 들으면 콧방귀를 뀌겠지만, 시작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그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한 명을 짝사랑했다. 그 친구를 좋아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남자애들도 여자애들도 모두 그 아이를 좋아했으니까. 집이 어려워 교회에 얹혀산다는 걸 전교생이 다 알고 있었지만, 그 아이는 구김이 없었다. 구김은커녕 반장과 전교회장까지 도맡아 하는 아이였다. 처음엔 짝꿍이어서 좋아했다가 나중에는 그냥 쭉 좋아해버렸다. 졸업할 때까지.
나는 오래 하는 짝사랑에 특히 강했다. 이사를 하면서, 나 혼자 다른 지역에 있는 중학교에 가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짝사랑의 상대도 바뀌게 되었다. 더는 만날 일 없는 초등학교 동창을 계속 짝사랑하긴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옆 학교에 있는, 이름만 아는 남학생이 나의 짝사랑을 고스란히 받았다. 중학교 3년 내내. 이상하게 학원에서 자주 마주치는 친구였다. 영어 수업도 수학 수업도 그 친구와 같이 들었다. ‘같이’라는 말에 오해는 하지 마시길. 한 교실 안에 ‘같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불행히도 단 한 번을 옆에 앉아본 적도 없었다. 물론 인사도 한 번 해본 적 없고.
그 친구를 다시 만난 건 대학교 첫 강의실에서였다. 그렇다. 대학생이 되어서 들어간 첫 강의실에서 중학교 내내 짝사랑하던 그 친구를 만난 것이었다. 만났다? 아니. 뒤통수만 보고도 그 아이인 걸 나만 혼자 알아봤다. ‘고3 때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보람을 이곳에서 찾는구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선생님의 말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친구가 혹시나 나를 알아볼까 나는 내내 심장이 쿵쾅거렸다. 말을 걸어 볼까. 말을 걸면 나를 알아볼까. 절대 못 알아보겠지? 어떻게 해야 하나 머리를 싸매고 있는데 수업이 끝났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 봤대이.” “×××? 니가 중학교 때 좋아하던 애? 같은 학교 온 거가?” “응. 방금 첫 수업 들어갔는데 딱 앉아 있는 거야.” “말 걸어봐라.” “싫다. 말 걸어도 내 모를걸?”
도저히 말을 걸 수가 없었다. 나를 알아볼 리가 만무했기 때문이다. 나의 짝사랑은 철저한 짝사랑. 인사도 한 번 하지 않고, 눈 한 번 마주치지 않는 짝사랑. 혹시라도 눈 마주치게 되더라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 사랑. 심장이 터질 것 같아도 얼굴 근육 하나 움직이지 않는 사랑. 절대 들키지 않는, 절대 들키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짝사랑이었다. 그땐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사랑의 다른 방법을 나는 알지 못했다. 결국 그 친구에게도 인사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그렇다고 연애를 한 번도 못 해본 건 아니다. 짝사랑에 종지부를 찍어야 하는 순간이 오기도 했다. 또 한 친구를 짝사랑하던 중에 그가 나에게 고백해왔다. 한겨울 밤, 눈이 펑펑 내리는 교정을 단둘이 걸으면서도 들키지 않았던 나의 짝사랑이, 둘이서 매일 만나 같이 공부를 하면서도 내색조차 하지 않았던 나의 짝사랑이 그 친구의 고백으로 와르르 무너졌다. 드물지만 그런 순간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애가 끝난 뒤 나의 전공은 변하지 않았다. 짝사랑. 내 감정에 책임을 질 필요가 없으니 편리하고, 상대의 감정을 고려할 필요가 없으니 평온했다.
그 평온하던 수면 위로 친구가 조약돌을 하나 던졌다. 소개팅을 하라는 친구의 명령이었다. “몇 년 전부터 자연스럽게 소개해주려고 했는데, 귀찮아. 전화번호 알려줄 테니까 둘이 알아서 만나.” 홍대 근처 평범한 파스타집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저녁이 길어졌다.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책 이야기를 했다가, 출판사 이야기를 했다가, 그림 이야기도 했다가, 술 이야기도 했다가, 서로 좋아하는 것들을 늘어놓기만 했는데도 시간이 차곡차곡 쌓였다. 그 남자가 이야기를 했다. 어쩌다가 반 고흐로 이야기가 흘러간 찰나였다. “그 그림 있잖아요. 고흐가 고갱의 의자를 그린 그림. 그 그림을 보고 있으면 고흐가 고갱을 진짜 좋아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너무 좋아해서 차마 그 사람의 얼굴을 그릴 수는 없었구나, 싶은 거죠.” 그 순간이었다. 이상형의 종이 울렸다. 땡땡땡. 이 사람이었다. 잡아야 하는 바로 그 사람. 그런데 내가? 내가 누구를 잡겠다고? 내가? 과연 내가? 짝사랑의 달인, 짝사랑의 성직자, 평생을 짝사랑에 투신해온 내가? 과연 가능한 일일까?
반강제로 나간 소개팅
대화에 시간을 잊었다
땡땡땡, 이상형의 종이 울렸다
내가 이 사람을 잡을 수 있을까?
작가 루이제 린저의 글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삼십 이전에는 고통과 격정에 완전히 자신을 맡겨야 한다. 모험을 감행해야 한다. 그렇다! 털 뽑힌 호랑이가 되어야 한다. 안 그럴 경우, 맥없는 고양이일 뿐이다.’ 그 구절을 앞에 두고 한참을 생각했다. 나는 늘 사랑이라는 호숫가에 서 있기만 했다. 아름답다고 감탄만 하고, 손 한 번 담그지 않았다. 마치 손을 갖다 대기만 해도 온몸이 푸른색으로 물들어버릴까 걱정하는 사람처럼. 나는 철저하게 호수 옆에 서 있기만 했다. 호수 안에서 즐거운 연인들을 보면서. 아무리 호수에 들어가고 싶어도 한 발은 뒤로 빼고 서 있었다. 언제나 도망갈 수 있도록. 순식간에 혼자서 저 멀리 도망갈 수 있도록.
더 이상 안전할 수는 없었다. 모험이 필요했다. 때마침 그 남자의 생일이 다가왔다. 공교롭게도 팀장님은 야근을 선언하셨다. 모두 저녁을 먹으러 갔고, 나는 그 사람의 생일 케이크를 사러 갔다. 밤늦게 회의가 끝났다. 회의를 정리하고 자리에 앉을 때 팀장님에게 말했다. 퇴근해야겠다고. 오늘이 소개팅한 남자의 생일이라고. 소개팅을 했다는 사실도, 내가 남자에게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도, 혹은 적극적으로 나서고 싶은 남자가 있다는 사실조차도, 그러니까 아무것도 예상 못한 팀 사람들의 입이 딱 벌어졌다. 그 모습을 뒤로하고 택시를 탔다. 그 사람의 집은 신촌. 회사는 강남. 택시를 타고 신촌을 갔다. 케이크를 단단히 들고. 그리고 어떻게 되었냐고?
단 한 번의 미친 짓은, 그러니까 내 인생에 가능할 거라 생각해본 적도 없는 용기는, 아님 말고 식의 밀어붙이기는, 성공으로 끝났다. 짝사랑의 역사도 끝났다. 글을 쓰고 있는 오늘부로 이 남자와 만난 지 딱 10년을 채웠다. 아주 가끔은 털 뽑힌 호랑이, 아니 고양이라도, 아니 뭐라도 되어보는 게 좋은 것 같다. 그 낯선 존재가 우리를 생각지도 못한 땅에 데려다놓곤 하니 말이다.
김민철 카피라이터·<모든 요일의 여행>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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