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부스의 먹는 인류
일본 라멘 다양하고 독창적
최근 10년 라멘 전 세계 사로잡아
라멘 대적할 만한 쌀국수 대세로 떠올라
베트남 가 직접 맛보니 허브 가득한 맛 놀라워
일본 라멘 장인도 쌀국수에 배울 게 많아
허브·칠리소스·라임즙 등 넣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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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이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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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멘 마니아들이여, 시간이 되었다. 이제 김이 펄펄 나는 사발에서 얼굴을 들 시간이고, 국물을 후루룩 들이켜는 걸 잠시 멈출 시간이며, 세상에 라멘 말고도 얼마든지 멋진 국물이 넉넉한 국수 요리가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향해 마음을 열 때다.
지난 몇 년간 전 세계는 라멘 열풍에 사로잡혀서 허우적거렸다. 물론 나도 예외일 수는 없다. 일본에 있을 때 일주일에 네 번이나 라멘을 먹은 적이 있다. 미소(일본식 된장)를 넣은 삿포로라멘, 길고 가느다란 면을 넣은 하카타의 돈코츠라멘, 간장을 베이스로 한 기타카타의 소유라멘 등 일본 라멘은 지역별 다양성도 환상적인데 여기에 장인들의 놀라운 독창성까지 보태면 라멘에 질릴 틈이 없었다. 언제나 먹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새로운 라멘 가게가 있었고, 새로운 메뉴가 나타났다. 그러니 지난 10년 동안 라멘이 전 세계에 퍼져나갈 수밖에. 런던에서 뉴욕으로, 파리와 코펜하겐으로. 현대적인 분위기의 라멘 가게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짜릿했다.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라멘에 탐닉하는 나날을 보내다가, 갑자기 2~3년 전부터 도쿄에 베트남 쌀국수 전문점이 여기저기서 생기고 있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향이 그윽한 맑은 육수에는 팔각 향까지 포인트로 살짝 더해 더욱 다채롭고, 부드러운 면 위에 얇고 보드라운 비프를 얇게 저며 올리고 그 위에 허브를 넉넉하게 듬뿍 뿌린 쌀국수는 모든 면이 너무나 완벽하게 들어맞는 음식이다. 나는 천천히 한입, 한입 음미하며 국물을 먹기 시작했는데, 마시면 마실수록 더 마시고 싶은 욕망이 폭발해 나도 모르게 후루룩 들이켜다가 결국엔 마지막 소중한 한 방울까지 깨끗이 먹어치우고는 흠칫 놀랐다. 고기 육수에서 나오는 만족스러운 감칠맛, 그렇지만 가볍고 간간하고 산미도 더해져 있는 데다 은혜로운 향까지! ‘이건 분명히 다음번 한 그릇 음식 분야 대세가 될 거야’라고 혼자 중얼거렸고 내 생각은 옳았다. (물론 한국은 쌀국수 열풍이 일본보다 훨씬 일찍 불었다는 건 알고 있다.)
쌀국수는 신실하고 참된 패스트푸드의 상징이다. 수개월 전에 영국의 베트남 쌀국수 체인점이 ‘포’라는 단어에 상표권을 등록하려고 한 적이 있다. 소셜미디어에서 엄청난 폭동이 일어났고 결국 포기했지만, 나중에 보니 그들은 그저 미국 체인을 막으려고 했던 것뿐이었다고 한다. 쌀국수, ‘포’는 이미 대세가 되었다.
난 더 알고 싶어서 베트남으로 갔다. 그러곤 쌀국수의 흔적을 좇아 쌀국수의 발원지와 가까운 베트남 북쪽에 위치한 수도 하노이부터 남쪽의 호찌민까지 여행에 나섰다.
난 언제나 쌀국수란 쇠고기로 만들어야 하며 아침 식사로 먹어야 하는 음식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었다. 달걀프라이와 커피로 간단히 아침을 먹듯이 말이다. 그러나 하노이에서 음식 전문가인 ‘반 콩 투 씨’를 만나고는 충격을 받았다. “물론 아침마다 먹는 음식이 쌀국수죠. 그런데 점심밥이 되기도 하고 저녁에도 먹지요.” 부드러운 표정으로 그가 말해줬다. 길가의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닭고기 쌀국수를 먹으며 들은 말이다. (아무 때나 먹는다는 데서 한 번 놀라고 쇠고기 쌀국수만 있는 게 아니라 닭고기 쌀국수도 있다는 점에서 한 번 더 놀랐다. 심지어 돼지고기로도 쌀국수를 만든다고 한다.)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은 대로 먹으면 되는 것이랍니다.”
북쪽 지방에서 만드는 쌀국수의 국물은 남쪽 지방의 국물보다 더 맑다. 그 대신 더 짜다. 남쪽 지방의 쌀국수는 왠지 좀 달곰한 느낌인데 그것 때문에 허브를 마음껏 더 넣을 수 있다. 베트남에선 어디서나 엠에스지(MSG)를 아낌없이 사용하고 ‘사 숭’(sa sung)이라는 바다 지렁이 말린 것을 넣기도 하는데, 사 숭을 넣으면 새우나 오징어로 국물 낼 때 흔히 나는 생선 잡비린내가 하나도 안 나고 엄청나게 감칠맛이 난다. 사 숭은 영어권에선 땅콩 벌레(Peanut worm)로도 알려져 있다. 사 숭은 실제로 보면 아주 통통하게 생겼고 굼벵이와도 비슷해 보이는데, 바다낚시에서 사용하는 갯지렁이와는 다르니 오해 없길 바란다. 쌀국수에는 물론 사 숭 외에 때때로 새우나 오징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호찌민의 쌀국수는, 오! 정말 라멘이 정신 바짝 차려야 할 정도로 정말, 정말, 정말 맛있다. 생면을 사용하고 저민 마늘과 잘게 썬 파를 올려주는 하노이식과는 다르게 건면을 사용하며 숙주와 양파절임을 풍부하게 넣어준다. 전 세계를 폭풍처럼 집어삼키고 있는 것이 바로 이 호찌민식 쌀국수다. 신선하고 환상적으로 향기롭지만 깊은 맛이 나서 정말 만족스럽다.
노파심을 드러내는 대신 차라리 라멘 장인들에게 제안 한 가지를 할까 한다. 라멘 장인들은 새로운 재료와 스타일을 통합하는 데 천재들이고, 지난 10년간 라멘계의 혁신을 이끌어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아직 미개척지가 남아 있는 것일 뿐이다. 그런 그들이 쌀국수에서 배우지 못할 게 뭐가 있담?
예를 들어 좀 산뜻하고 가벼운 국물(물론 가벼운 국물은 이미 도쿄 라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이나 그렇지 않으면 라멘 육수를 낼 때 맨날 쓰는 돼지 뼈나 닭 뼈로 우리는 대신 소뼈를 사용하는 것이다. (라멘에 소뼈 육수를 사용한 것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먹는 사람들이 맘대로 더 넣어 먹을 수 있도록 양념장을 주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한국에서 고추장, 된장을 마음대로 넣는 것처럼 말이다. 라멘에 칠리소스를 더한다든가 라임즙을 짜서 넣는다든가 어쩌면 밀가루면 대신 쌀면을 사용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내가 쌀국수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은 신선한 허브를 넘치도록 듬뿍 넣는다는 점이다. 쿨란트로, 스윗바질, 고수, 민트 그리고 기절할 것 같은 피시 민트까지. (진짜로 생선이랑 민트를 섞어놓은 것 같은 맛이 나는 허브다. 베트남에서는 국물에 본인이 원하는 만큼 넣어 먹으라고 주기도 한다. 아니다, 꼭 준다.)
라멘에 허브라니 정말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제일 좋은 점은 허브들은 먹으면서 건강해진다고 느끼게 해준다는 것이다. 라멘 한 그릇 비우고 나서도 고칼로리 정크푸드를 먹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릴 필요 없이 건강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건 꽤 기발한 트릭이다.
마이클 부스(푸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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