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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고니아의 여름. 사진 노동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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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효의 지구 둘레길
셰익스피어, 코넌 도일 등에 영감 준 여행지
아르헨티나와 칠레에 걸쳐 있는 파타고니아
추위가 악명 높지만, 12월 이곳은 꽃피는 여름
야생 꽃, 하얀 빙하 등 시선 압도하는 풍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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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고니아의 여름. 사진 노동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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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고니아는 대체 어디에 있는 나라야?
파타고니아로 간다고 했을 때 세계 190여개국 중 하나쯤으로 여겼던지 친구가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앵글로색슨계의 ‘~랜드’(land), 이슬람권의 ‘~스탄’(stan)과 더불어 에티오피아, 나미비아, 콜롬비아, 볼리비아, 보스니아, 슬로베니아 등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에 이르기까지 국가명에 가장 빈번하게 붙는 접미사가 ‘~이아’(ia)니까. 그러나 파타고니아는 아르헨티나와 칠레가 양분하는 땅으로 국가가 아니다. 게다가 아마존이나 알래스카처럼 자연환경으로 뚜렷이 구분되는 지역도 아니다.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 영감을 주고,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 거인 모델을 제공하고, 코넌 도일의 <읽어버린 세계>에 소재를 제공한 파타고니아는 남위 40도 아래 남아메리카를 가리키지만, 경계가 모호한 땅으로 오래전부터 유럽과 북미 출신 탐험가, 은둔자, 무법자, 도피자를 불러들였다. 탐험가를 불러들인 점에선 남극, 북극, 히말라야산맥 같은 극지와 닮았고, 무법자와 개척자를 불러들인 점에선 미국의 서부와 비슷하고, 은둔자와 도피자를 불러들인 점에선 태평양의 외딴섬 같은 곳. 아니, 이 모두를 아우르는 땅이 파타고니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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푼타아레나스시 아르마스 광장에 있는 마젤란 동상. 사진 노동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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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고니아를 세계인에게 널리 알린 이는 영국인 브루스 채트윈이었다. 소더비의 경비, 고고학과 중퇴생, 신문기자를 전전했던 그는 아프리카 여행 중 방랑에 눈을 떴다. 방랑은 어떤 이에겐 첫사랑처럼 잠깐 스쳐 지나가는 홍역에 불과하지만, 또 어떤 이에겐 불치의 병이 되기도 한다. 방랑에 감염된 브루스는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인류가 닿은 가장 먼 땅으로 갔다. 아메리카의 남쪽 끝자락,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곳. 그는 세밀화를 그리듯 그곳에 온 사람들과 나눈 대화, 그들의 인상, 역사, 전해오는 이야기를 기록한 뒤 책으로 펴냈다. 지역명과 같은 이름의 책. <파타고니아>.
사람을 휙 들어서 날려버릴 정도로 세찬 바람과 온몸을 얼어붙게 하는 추위로 악명 높은 땅이지만, 이곳에도 여름은 온다. 바로 지금, 12월의 파타고니아는 바야흐로 꽃피는 여름이다. 추위와 바람이 누그러진 11월에서 2월 사이 여행자들은 눈 시릴 정도로 청명한 하늘, 따사로운 햇볕 아래 꽃망울을 터뜨리는 야생화, 칼날처럼 선명한 산세를 감상하기 위해 파타고니아로 몰려든다. 덕분에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진, 그래서 죽기 전에 반드시 지나야 한다는 ‘루타 40번’ 도로도 이 기간엔 대중교통 버스가 원활하게 운행된다.
파타고니아의 명소는 토레스델파이네 봉우리들, 피츠로이산, 모레노 빙하를 꼽을 수 있고, 엘칼라파테, 엘찰텐, 푼타아레나스, 우수아이아가 대표 도시다. 성수기이니만큼 3월~10월 비수기보다 숙박료는 2~3배 오르고, 전망 좋은 캠프의 경우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를 구할 수 없을 정도로 경쟁률이 치열하지만 11월~2월의 파타고니아는 다른 계절에 비해 몇 배의 값을 치러도 좋을 정도로 아름답다. 단언컨대 인생에서 단 한 번이라도 파타고니아를 여행할 작정이면 이때 파타고니아를 경험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한 해의 끝에서 ‘세상 끝’에 서 있는 기분은 더욱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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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레스델파이네 국립공원의 페오에 호수. 사진 노동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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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고니아를 대표하는 두 도시, 칠레의 푼타아레나스와 아르헨티나의 우수아이아는 오랫동안 ‘세상 끝의 도시’란 타이틀을 두고 경쟁했다. 푼타아레나스는 ‘아메리카 대륙 최남단 도시’라는 이유를 내세워 세상 끝의 도시라고 주장했고, 우수아이아는 섬(티에라델푸에고)일지라도 ‘지구상 최남단 도시’라는 이유를 내세워 세상 끝의 도시라고 주장했다. 영화 <해피투게더>가 개봉하면서 균형추는 우수아이아로 기울었다. 영화 말미에서 두 주인공이 주고받던 대화 때문이다.
―이제 어디로 가?
―우수아이아란 곳에 갈 거야.
―추운 데 가서 뭐 하게?
―거긴 세상의 끝이래.
푼타아레나스는 한동안 마가야네스(마젤란의 스페인 이름)란 이름으로 불렸다. 아르마스광장에 서 있는 동상의 주인공도 마젤란이다. 지구 한 바퀴를 돈 최초의 인간. 마젤란은 아메리카에 닿은 뒤 해안선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고, 마침내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이어지는 해협을 찾아냈다. 훗날 그의 이름이 붙었다. 파나마 운하가 생기기 전까지 마젤란 해협은 유럽인이 대서양을 지나 태평양 연안 도시로 가기 위한 가장 빠른 해로였다. 푼타아레나스의 전성기도 이 무렵,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였다. 1만제곱킬로미터에 이르는 양떼목장이 들어섰고, 금광을 발견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전 세계에서 이민자가 몰려들었다. 독일, 영국, 프랑스, 덴마크, 이탈리아, 스페인, 크로아티아 등.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의 실존인물 부치 캐시디가 파타고니아를 찾은 시기도 이 무렵이다.
마젤란 해협을 건너면 군도다. 우수아이아는 티에라델푸에고(불의 땅)섬에서 가장 큰 도시로 인구 13만명의 푼타아레나스에는 못 미치지만, 6만명의 시민이 거주한다. 야간족(남미 남단에 거주하는 원주민) 언어로 ‘깊은 만’이란 뜻을 가진 항구도시에 인접한 바다의 이름은 비글 해협. 영국 해군 로버트 피츠로이 선장은 측량 항해를 하는 동안 지적인 대화를 나눌 사람을 찾았고, 세상을 탐구하고 싶었던 젊은이가 승선했다. 그의 이름은 찰스 다윈, 선박의 이름은 비글호였다. 5년간에 이르는 항해는 <비글호 항해기>란 제목으로 출판되었고, 이 여행은 다윈이 <종의 기원>을 집필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관광객은 ‘세상 끝’(Del fin del Mundo)이란 라벨이 붙은 와인을 마시고 ‘세상 끝’(The End of World)이란 이정표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2년마다 ‘세상 끝에서 보다 나은 세계를 생각하라’를 기치로 열리는 현대미술비엔날레를 관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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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젤란 해협을 마주하는 푼타아레나스. 사진 노동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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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을 압도하는 풍광으로 가득한 파타고니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관 중 하나는 모레노 빙하다. 아르헨티나의 소도시 엘칼라파테(남아메리카 주요 도시를 오가는 공항이 있다)에서 1시간 거리에 로스글라시아레스 국립공원이 있다. 방대한 공원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모레노 빙하는 바다에 둥둥 뜬 빙하만 떠올리던 사람들에게 잊을 수 없는 풍경을 선사한다. 대한민국 전주시보다 넓은 면적의 빙하가 아르헨티노호수 앞에서 높이 50미터, 길이 5킬로미터에 이르는 단면을 드러내고 여행자를 맞이한다. 매일 2미터씩 이동하는 빙원은 웅장한 소리를 내며 호수를 향해 무너진다. 여름엔 빙하가 떨어지는 장면을 더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지구온난화로 빙하 면적이 점점 줄지만 모레노 빙하는 소멸하는 양만큼 생성되면서 면적과 크기가 유지된다.
엘칼라파테에서 2시간 반 정도 거리엔 엘찰텐이 있다. 서부영화에 나올 것 같은 이름의 마을에 여름이 오면 카우보이나 총잡이 대신 등반 장비를 들고 오가는 산악인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봉우리 중 하나로 꼽히는 피츠로이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최적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평소 구름과 안개에 가려져 있기 때문에 원주민어로 ‘찰텐’(연기를 내뿜는 산)이라고 불리지만 이 무렵이면 거대한 이빨로 하늘을 물어뜯는 듯한 모습을 드러낸다.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 로고도 창립자인 이본 슈나드가 피츠로이 산세를 형상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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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레스델파이네 국립공원의 상징이자 하이라이트. 사진 노동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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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절경’에 수차례 꼽혔던 칠레의 토레스델파이네 국립공원은 웅장한 산세, 거대한 빙하, 풍부한 야생생물, 에메랄드빛 호수가 자아내는 풍경이 마치 톨킨이 <반지의 제왕>에서 묘사했던 중간계로 들어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장소다. 피터 잭슨이 뉴질랜드 출신이 아니었더라면 파타고니아를 로케이션 장소로 택했으리라. 특히 1200만년 전에 형성된 화강암 산괴 중 압권은 ‘토레스델파이네’라는 삼봉과의 조우다. ‘숨 막히는 풍경’이란 관용적 표현이 이곳처럼 적절한 장소가 있을까. 트레킹 코스는 국립공원을 도는 모양에 따라 ‘W’와 ‘O’자 코스가 있는데 짧게는 4일에서 길게는 10일이 걸린다. 텐트, 침낭, 버너, 코펠 등 야영에 필요한 모든 장비를 푸에르토나탈레스의 대여점에서 빌릴 수 있다.
이것으로 파타고니아를 대략 훑어보았다. 파타고니아는 ‘세상의 끝, 모든 것의 시작’이란 모토로 여행자를 불러들인다. 특히 12월과 1월에 파타고니아에 도착한 여행자의 얼굴은 여느 휴가지에서와 다른 설렘으로 가득하다. 세상의 끝, 이제 어디로 가든 시작이니까!
이번 칼럼은 홍보성 글이다. 앞으로 3개월이 파타고니아의 정수를 맛보기 가장 좋은 때라고 알리는. 물론 오가는 거리와 시간은 만만치 않다. 그래서 갈까 말까 망설일 독자에게 파타고니아 어느 국립공원 이정표에 씌어 있던 문장을 전한다.
“라이프 이즈 어 롱 위크엔드”(삶은 하나의 긴 주말이다)
글·사진 노동효(<남미 히피 로드>의 저자·여행작가)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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