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20.01.16 09:32
수정 : 2020.01.16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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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비영농조합의 벌꿀 와인.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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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선 역사가 긴 벌꿀 와인
한국에서도 만들기 시작해
각종 국내외 대회에서 수상한 ‘아아비영농조합’
천연 꿀과 진피 활용해 독특한 맛 자랑
‘곰세마리 양조장’ ’제주허니와인’ 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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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비영농조합의 벌꿀 와인.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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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로 와인을 만든다고요? 우리나라에서요?’ 지난 10일 ‘허니비와인’과 ‘허니문와인’을 제조하는 아이비영농조합을 찾았다. 이곳에선 벌꿀로 와인을 만든다. 통상 술의 재료는 쌀 같은 곡식이나 과일이다. 약용으로 쓰기에도 아까운 꿀로 술을 빚는다는 아이비영농조합. 한국 술 역사에 새 이정표라도 세우려는 것일까?
시큼하고 큼큼한 향이 코를 점령한다. 순식간에 거대한 술통에 빠진 ‘레미’(음식 영화 <라따뚜이> 주인공)가 됐다. 지난 10일 도착한 경기도 양평군 강하면에 있는 아이비영농조합. 양경열(66) 회장이 발효실로 잡아끈다. 13㎡(4평) 남짓한 발효실에는 1000ℓ짜리 발효 통 4개가 있다. 양 회장이 그중 하나를 골라 덮개 천을 들춰내고 맛을 봤다. 당도(브릭스) 재는 도구를 활용해 맛을 본 회장은 말했다. “맛있네! 맛있어.” 건강하게 성장한 아들을 대견해 하는 표정이다. 꿀 와인은 그에게 자식과 다름없다. 양봉업자였던 그는 2011년께 이상 기온 등으로 “꿀이 비 오듯 생산되는 바람에 걱정이 컸다”고 한다. 경기도 일대 양봉업자 30여명의 조직인 ‘아이비영농조합’을 2007년께 결성해 회장을 맡은 그가 당시 해내야 할 과업은 판로를 개척하는 것이었다. “꿀차 등도 만들었는데, 한계가 있었다. 그 많은 꿀을 다 팔기 쉽지 않았다.” 결국 그가 찾아낸 방법이 꿀 와인 제조였다. 그 길로 경기도농업기술원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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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비영농조합 양경열 회장.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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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꿀을 발효해 만드는 꿀 와인은 주로 서양에서 ‘미드’(mead)라는 범주로 분류돼 생산됐다. 양조 전문가들은 미드의 기원을 포도 와인 탄생만큼이나 오래전이라고 본다. 자연에 퍼져있던 벌이 만든 꿀과 물, 효모만 있으면 발효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벌집이나 숲 속 등 꿀이 있는 곳에 물이 고이면 신의 손이 쓱 만진 것처럼 술이 완성됐다. 꿀을 만난 물에 자연에서 떠돌던 미생물이 앉으면 말이다. 뜻밖에 한국도 벌꿀 술 제조에 관한 기록이 있다. 숙종 때 홍만선이 쓴 <산림경제>와 조선 후기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엔 벌꿀과 누룩을 활용한 술 제조법이 남아있다. 미드의 종류는 다양한데, 첨가한 재료에 따라 맛이 다르다. 서양의 양조업자들은 과일, 허브, 향신료 등을 추가로 넣으면서 맛의 변주를 꾀했다.
2011년 경기도농업기술원에서 기술이전을 받은 양 회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국인들의 입맛에 맞는 벌꿀 와인 제조에 나섰다. 맛의 화룡점정을 찾아낸 것이다. 경기도농업기술원 연구원들과 함께 여러 차례 연구에 몰두한 그는 진피(귤껍질)의 쓰임에 눈을 떴다. “서양 미드처럼 만드니까 걸쭉하고 꿀 자체 향이 너무 강했다. 우리 입맛엔 안 맞는다. 그래서 솔잎, 국화꽃, 한약 등 다양한 재료로 실험해봤는데, 알코올 생성 후 진피 넣는 게 가장 괜찮았다. 향을 내기 위한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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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비영농조합 양 회장이 당도를 재고 있다.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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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꿀을 만들어내는 벌도 특별하게 관리했다. 통영 사량도, 인천 덕적도나 무의도 등에서 교배하는 식이었다. 어떤 변수도 작용하지 않도록 조처를 한 것이다. 꿀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채취하고, 날씨에 따라 발효 기간은 달라진다고 한다. 숙성은 3달. 시설은 500ℓ와 1000ℓ짜리 발효 탱크를 고작 7~8개 정도 갖춘 정도다. 자동시설도 없다. 그야말로 ‘느린 양조’다.
맛은 어떨까? 감기몸살로 몸이 무거워지면 어머니가 끓여주는 꿀물 맛일까? 첫맛은 달다. 당연한 맛이다. 하지만 단맛만 있지 않다. 살짝 도는 쌉싸름한 맛이 있다. 천박한 단맛도 아니다. 은은하고 우아하다. 알코올 특유의 강한 맛이 싫은 이들이 좋아할 만하다. 김상미 와인 칼럼니스트는 “술에서 달콤한 꿀 향이 나고, 둥글둥글한 느낌”이라며 “차갑게 하거나 레몬이나 라임을 넣어 마시면 좋을 듯하다”고 평한다. 달기 때문에 디저트나 설탕이나 간 배 등을 넣어 버무린 불고기 등과 잘 어울린다.
‘꿀같이 달콤한 달’이라는 뜻인 ‘허니문’(결혼 후 즐겁고 달콤한 시기)도 노르웨이 신혼부부들이 결혼 후 한 달간 벌꿀 와인을 마시는 풍습에서 유래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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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비영농조합에서 생산하는 3가지 꿀.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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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회장이 새로 도전하고 있는 벌꿀 유자 와인.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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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와인은 ‘2019 우리 술 품평회’ 같은 국내 술 품평회나 국제적인 평가대회인 몽드셀렉션 등에서 수상을 했다. 4년 전엔 주한미군 측에서 관심을 보여 양조장도 구경시켰다고 한다.
그는 자부심이 강하다. “서양 미드도 다 시음해봤는데, 우리 꿀 와인이 질이나 맛 등이 월등히 우수하기 때문에 앞으로 유럽 등에 수출하는 일에도 힘을 쏟을 생각”이라고 말한다.
그라고 해서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날 어려움이 그저 자양분이 됐다고 생각한다. “아이엠에프(IMF)가 터진 1997년, 주거래은행이 부도를 맞는 등 사업이 어려워지자 양봉업을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을 찾았다.” 그가 고른 지역이 경기도 양평이었던 것이다. 아는 이 없는 그곳에서 야산을 매입해 “낭인처럼 벌을 키웠다”고 한다.
한쪽엔 뚝딱뚝딱 건물 짓는 소리가 요란했다. 어째 술 제조와 관련 없는 건물 같았다. “곧 우리 술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 생각인데, 밀랍 비누 만들기 등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할 건물”이라고 일러준다. 2월부터 키운 벌이 꽃피는 3~4월이 되면 활발하게 움직이는데, 그때 이곳에 오면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고 자랑한다.
아쉬운 점은 “생산자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정부가 관심이 없으면 발전하기 어렵다. 우리 전통주 분야에 정부가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말한다.
양평(경기)/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SC] 벌꿀 와인 삼총사
한국에서 벌꿀 와인을 생산하는 곳은 아이비영농조합만 있는 건 아니다. 대략 아이비영농조합을 포함해 3곳이라고 알려져 있다. 요즘 온라인 쇼핑몰 등을 중심으로 독특한 한국 와인을 구매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곰세마리양조장
5년 전에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20대 청년 3명이 문 연 양조장. 현재는 이용곤(34) 이사가 운영한다. 생산하는 꿀 와인은 4가지. ‘어린꿀술’, ‘오리지널 미드’, ‘스위트 미드’, ‘사랑을 담아’ 등. 계절마다 나오는 벌꿀 와인이 다르다. 벚꽃 꿀 와인, 밀감 꿀 와인 등이 생산된다. 소비자가 3~4만원.(500㎖) 경기도 인근에서 생산되는 자연산 꿀 100%를 사용한다고 한다. 레몬이나 건포도가 들어간다.
제주허니와인
‘우리나라 제일 작은 와인 양조장’이라는 글을 문패에 단 제주허니와인은 제주 양봉 농가에서 생산한 벌꿀과 제주산 감귤즙을 섞어 벌꿀 와인을 만든다. 25년간 공무원으로 일한 이장호(55)씨가 지난해 1월 문 연 양조장. 사내 와인 강사를 할 정도로 와인에 조예가 깊은 이씨가 만든 와인은 ‘제주허니와인 오아르(OR)’이다. 소비자가는 2만5000원.(375㎖) 아이비영농조합과 곰세마리양조장에 견줘 산미가 조금 더 있고, 도수가 높다. 12도다. 감귤즙을 넣는 게 특징이다.
아이비영농조합
국내외 술 품평회에서 수상을 여러 번 한 양조장. 허니비와인과 허니문와인을 생산한다. 허니비와인 500㎖와 허니문와인 375㎖를 판다. 가격은 3만5000원.
박미향 기자 mh@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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