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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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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웅의 설거지2
터미네이터 주인공 같은 요가 선생님
즐기면서 해야 오래 한다는데
4개월째 전투적으로 매달리는 요가
본래 관심 전혀 없던 운동
안 해본 도전에서 얻은 것들
‘몸이 이기는 경험’ 소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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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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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열심히 해요? 사라 코너가 물었다. 사라 코너는 우리 요가 선생님이다. 속으로 그렇게 부른다. 동작을 제대로 따라 하지 못하면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사라 코너처럼 한손으로 레밍턴을 장전하고 다른 손으로 뼈를 부러뜨릴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잠시 멍해졌다. 대답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반에서 제일 못하는데 성실하기라도 해야죠”라고 얼버무렸다. “너무 애를 쓰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즐기면서 해야지 오래 할 수 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요가를 할 때 내 표정을 스스로 본 적이 없지만, 아무래도 앞에서 보면 가관인 모양이다. 베헤리트의 알 같을 거다. 며칠이 지나도 질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왜 요가를 열심히 하는 걸까.
아닌 게 아니라 열심히 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아무리 덜떨어져도 성실하게만 하면 중간은 갈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으로는 중간만큼만 할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겠다. 뭐든지 중간만큼 하는 게 가장 어려운 법이다. 한동안은 하루도 빼먹지 않고 수련했다. 지금도 일 때문에 시간을 타협할 수 없는 하루 정도를 제외하면 일주일이 요가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4개월째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전한 요린이다.
다치기도 많이 다쳤다. 무릎과 발등이 까지고 고관절에 붙어 있는 근육에 매번 무리가 와 절룩거렸다. 아쉬탕가가 아무리 전투 요가라지만, 발가락이 벗겨지고 피가 나서 밴드를 감고 감다가 미라 같은 몰골로 엎드려 땀을 뚝뚝 흘리고 있으면 이러다가 병원에 돌아가는 게 아닌가 겁이 났다. 그러면 한주 내내 슬럼프다. 상처가 벌어질까 봐 동작이 엉망이고 기분도 우울하다. 앞 동작까지 제대로 했는데 다치는 게 무서워서 다음 동작을 대충 뭉개는 순간 사라 코너와 눈이 마주치면 마음이 참담하다. 무엇보다 모멸감이 든다. 성실하지 않은 사람이 된 것 같다. 왜 세계는 우리가 실수할 때만 주목하는가. 그래도 상처가 좀 나으면 그다음 한주는 꽤 괜찮다. 전에는 흉내도 내지 못했던 동작을 하나씩 잘하게 된다. 안되던 동작을 하나 완성하면 그날은 세상이 아름답다.
평생 직장에서 집에서 글을 쓰고 살아왔다. 그와 같은 패턴으로 이십년 가까이 살았으면서도 관절이 자유자재로 꺾이는 분들에게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나는 숙명과도 같은 일자 허리와 거북목을 가지게 되었다. 허벅지의 뒤쪽 근육인 햄스트링이 마지막으로 길게 늘어나 있었던 먼 옛날 나는 유단자였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 짧아져서 햄스트링도 단증도 모두 잃어버린 기분이다. 도무지 일자로 펴지지를 않는다. 이십대 때는 선임병들이 배수로로 끌고 가서 양쪽 다리를 잡고 찢었다. 지금 그렇게 하면 몸이 양쪽으로 찢어질 거다.
운동을 쉰 적은 한 번도 없다. 하지만 늘 무게와 다투는 운동만 했다. 집안 내력 같은 거다. 다들 웨이트 트레이닝에 관심이 많다. 병과 싸우기 직전까지도 벤치프레스, 데드리프트, 스쿼트 무게를 합한 삼대 평점은 언제나 준수했다.(스코어를 따지는 운동이 아닌 웨이트 트레이닝에서 삼대 몇 킬로그램을 들 수 있느냐를 겨루는 건 자존심과 긍지의 문제다.) 항암 치료 도중 고열로 무균실에 갇혔던 것도 집에서 혼자 덤벨을 들다가 긁혀서 다쳤기 때문이었다. 치료가 끝나자마자 달려간 곳도 헬스장이었다. 그런 내가 세상 마지막 날까지 결코 하지 않을 운동이 단 하나 있다면, 그건 요가였다.
아무래도 요가는 너무, 뭐랄까, 지나치게 정적으로 보였다. 여자만의 전유물처럼 보였다. 문 앞에 개와 남자는 출입금지라고 쓰여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유연해야 할 수 있는 운동이었다. 유연하지 않은 몸으로 사십년 넘게 살아가는 사람의 삶이란 ‘유연하지 않아도 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끊임없는 자기 확신을 기반으로 기능하기 마련이다. 유연하지 않아도 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내가 왜 요가를 하나. 병이 다 나으면 하고 싶은 게 많았는데 아마 산티아고 순례길을 열 번 걷고 나면 요가를 했을까. 잘 모르겠다.
요가란 내게 의도하지 않은 사건이었다. 처음에는 아는 형이 같이 가자고 지겹게 졸라대서 구경이나 해볼까 싶어 따라갔다. 거기 아는 동생까지 붙어 엉겁결에 셋이 함께 등록했다. 뭐가 무슨 수업인지도 모르고 그냥 아무거나 선택했다. 그 아무거나가 아쉬탕가였다. 힘들어 봤자 다리나 조금 찢고 말겠지. 그리고 그날 나는 내가 지난 몇년간 흘린 걸 합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땀을 한 시간 만에 줄줄 쏟아내고는 발뒤꿈치까지 탈탈 털려서 침대 위에 고꾸라졌다. 자는 내내 세상이 탈수기처럼 돌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형과 동생은 사라졌다. 나만 남았다. 누군가가 믿을만하고 성실한 사람인가 확인해보려면 같이 요가를 해라.
다른 요가는 경험을 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일단 아쉬탕가는 전혀 정적이지 않았다. 전투 요가라는 말도 지금에야 웃으면서 할 수 있는 이야기지 처음에는 다들 미친 것 같았다. 여자만의 전유물도 아니었다. 그래도 열명 중에 한명 정도는 남자였다. 사실 마돈나의 할리우드 요가가 유행하기 전까지 요가가 여자만 하는 운동이라는 선입견은 존재하지 않았다. 부처님도 아직 싯다르타였던 시절,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을 바꾸기 위해 집단을 떠나기 전까지는 배와 등가죽이 붙어 있는 요가 수행자였다.
아쉬탕가는 요가 중에서도 유서가 깊고 체계가 과학적이다. 그래서 엄격하다. 땀 닦느라 동작에 집중을 못 했더니 사라 코너가 발로 내 손에 들려있던 수건을 낚아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오 신이시여. 다른 선생님들 말씀으로는 우리 사라 코너가 아쉬탕가 선생님 중에 비교적 온화한 편이라고 한다. 다른 선생님들은 발로 아랫배라도 걷어차는 모양이다. 아무튼 우리 선생님 이 글을 보신다면 사랑합니다.
처음 한 달은 오기로 버텼다. 자존심이 팔할이었던 것 같다. 다른 두 명도 그만뒀는데 나까지 사라지면 얼마나 꼴사나울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수업 시간도 일반인 클래스가 아닌 요가 선생님들이 수행하는 시간으로 옮겼다. 잘하는 사람들 주변에 있으면 눈곱만큼이라도 더 잘할 수 있겠지 싶었다. 하지만 자존심으로만 버티기에 아쉬탕가는 너무 큰 고난이었다. 계기가 된 건 역시나 되지 않는 동작이 되면서부터였다. 성실하게 하면 반드시 된다. 웨이트 트레이닝과 같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근육이 많이 개입되는 동작은 이제 대부분 자신이 붙었다. 허리를 숙이고 다리를 펴고 골반을 여는 동작들은 여전히 안 된다. 도무지 발전이 없다. 하지만 지난 몇개월간 그랬듯이, 성실하고 꾸준하게 하면 반드시 될 거라고 생각한다.
앞서도 말했지만 성실하지 않다는 건 내게 가장 큰 불명예다. 아무리 덜떨어져도 인사 잘하고 성실하면 중간은 간다. 정작 어릴 때 들었을 때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가 삶을 통해 신뢰하게 된 명제다. 대개 인사성과 성실함은 관료적이고 수직적인 사회에서나 빛을 발하는 덕목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그건 가장 끔찍한 오해들 가운데 하나다. 가진 것이 없을 때 저 두 가지는 가장 믿을만한 칼과 방패가 된다. 타인을 가늠하는데도, 나를 무장하는 데도 좋은 요령이다.
살면서 성실하게 노력한 만큼 공정하게 돌려받은 경험이라고는 몸을 쓰는 일밖에 없었다. 그 외에는 노력한 것보다 결과가 훨씬 더 좋거나 나빴다. 이와 같은 경험을 축적해서 쌓아나가는 일은 중요하다. 이기는 경험을 쌓으면 패배해도 주저앉아 비관하지 않고 다시 한 번, 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형편이 좋은 집에서 태어난 청년들은 이기는 경험을 쌓는 일이 비교적 수월하다. 스스로 형편이 불리하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무엇보다 몸을 이기는 경험을 쌓아나가자. 출발선이 다르고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몸을 이기는 경험을 대신 쌓는 것이다. 이기는 경험을 쌓는다는 건 언제 힘을 주고 뺐는지, 언제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는지 근육의 쓰임과 호흡의 감각을 기억해내는 것과 같다. 지는 것에만 익숙해지면 뭐가 진짜 이기는 거고 지는 건지조차 구분이 어려워진다. 되는 놈만 늘 되는 이유가 그런 것이다. 이겨본 사람만이 다시 이길 수 있고, 지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요컨대 끝까지 버틸 수 있는 몸을 만들자는 것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청년이었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의 나라면 그렇게 안 할 텐데 바보같이’라는 마음이 앞섰다. 마흔두살의 나는 점점 ‘그때의 나라면 지금 이렇게 안 할 텐데 바보같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나이 든다는 것은 과거의 나에게 패배하는 일이 잦아지는 것과 같다.
서른살 이후로 태어나서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걸 시도해본 기억이 없다. 대개 그렇다. 음악도 들었던 것만 듣고 운동도 했던 것만 하며 사람도 만나던 사람만 만난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만 열심히 했다. 요가는 해보지 않았던 것이고 잘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내게 요가란 그런 것이다. 그래서 그만둘 수 없었고, 그래서 열심히 한다. 이길 때의 기분을 오랜만에 느끼면서 그동안 쌓아왔던 경험치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걸 발견하게 된다. 다시 시작할 때다.
허지웅(작가)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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